매일신문

[신공항 백지화 이렇게 본다] '시일야방성대곡'

'스스로 영남출신 대통령'이라고 밝힌 이명박 대통령이 1일 2천만 남부권 주민들의 염원인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특별 기자회견을 열었다. 크게 기대한 바는 아니었으나 역시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된 회견이었다.

이 대통령은 "욕을 먹더라도 다음 세대가 짊어지게 될 부담을 생각해서 책임 있는 지도자는 이렇게(신공항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해 국가지도자로서의 고뇌 어린 결단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공항 백지화로 패닉상태에 빠진 대구경북 등 지방의 허탈과 분노에 대해서는 진심어린 위로와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후보 때 국민에게 공략한 것을 지키는 것이 도리이고 매우 중요하지만 이를 지키는 것이 국익에 반하면 계획을 변경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신공항을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남부주민을 졸지에 '지역 이기주의자'로 만들어 버렸으며 정치지도자들의 공약(公約)을 언제든지 '국익'이란 이름으로 공약(空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교범을 만들었다.

이 같은 발언과 인식은 동남권신공항을 공약으로 내걸 당시에는 '표만 얻을 요량으로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국민들에게 덜컥 던져놓았다'는 비난을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아울러 '공약은 전문가 등의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며 정치인의 공약을 스스로 깃털보다 가벼운 것으로 비하시켜 버렸다. '국가지도자인 대통령이 정치불신과 정치혐오를 조장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힘든 대목이다.

그러나 대통령 한 사람이 받을 비난과 불명예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구경북의 실상이다. 특히 GRDP(지역내 총생산)가 17년째 전국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구경제는 '영남출신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익판단(?)'으로 천우신조의 탈출구가 봉쇄되고 말았다.

'하늘길을 열어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고자'하는 지역민들의 절박함은 이제 분노와 허탈함을 넘어 절망감으로 치닫고 있다. 얼마나 많은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동남권 신공항 유치에 목을 매 왔던가. 진정 이들이 국익을 모르는 소아적 지역 이기주의자들이고 '믿을 것도 없는 공약에 목을 맨' 아둔한 민초들인지 이 대통령에게 직접 묻고 싶다.

지역의 발전은 물론 지역의 아들 딸들이 희망을 잃고 타지로 떠돌지 않게 하기 위해, 지역민들이 등 따습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 신공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국가지도자의 고뇌 어린 결단'이란 말은 겉멋 든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동남권 신공항은 결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프로젝트가 아니다. 대구경북민들에게는 생명줄이자 마지막 희망이다. 지역민들의 생명줄을 끊고 마지막 희망마저 매몰차게 빼앗으면서 국익 운운하는 것은 지역민들을 두 번 죽이는 행동이나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 장지연 황성신문 주필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민족의 아픔을 대변했다. 결사추진위 본부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신공항 백지화'라는 참담함을 막지 못한 자로서 지역민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사죄 드리며 선생의 표현을 빌려 지역민들의 분노와 아픔을 대변하고자 한다. '시일야방성대곡'. 이 날을 맞아 목 놓아 통곡한다.

강주열(영남권 신공항 밀양유치 범시도민 결사추진위원회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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