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없는데…" 옥탑방 월세를 살더라도 서울로

외국 출장 인천공항 가기 넌더리. 17년째 GRDP '전국 꼴찌' 도

정부는 수년간 계속됐던 신공항 논의를 수포로 만들어 버리고,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하지만 대구공항은 지리적
정부는 수년간 계속됐던 신공항 논의를 수포로 만들어 버리고,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하지만 대구공항은 지리적'입지적 한계 때문에 국제선 증편이 어려운 실정이라 대구경북민들은 여전히 교통에 있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KTX는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어 지방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초기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KTX는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어 지방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초기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빨대현상'만 가중시켜 지역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계기로 지방민들의 설움이 폭발하고 있다. 지금껏 각종 불편을 개선해 달라는 수많은 요구마저도 묵살했던 정부와 수도권이 제대로 된 평가와 근거도 없이 지난 수년간 영남민들의 염원이었던 신공항 문제를 물거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부가 이러니 지방 균형발전은커녕, '옥탑방에 월세살이를 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서울 가서 살겠다'며 꾸역꾸역 서울로 몰려드는 지방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서울에만 집중된 기형적인 구조의 나라. 각종 정부 제도뿐 아니라 경제, 교통, 문화 등 모든 서비스도 서울을 중심으로 제공되다 보니 늘 지방은 소외의 대상이었다.

◆멀고먼 인천공항길

해외 출장이 잦은 직장인 김태욱(38) 씨는 늘 인천공항까지 이동하는 일이 고역이다. 동대구터미널에서 리무진으로 이동하면 버스를 타는 시간만 5시간가량이 걸리는데다, KTX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동대구역으로 이동한 뒤 KTX를 타고 다시 공항철도를 갈아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 전 일본 출장만 해도 오전 8시 비행기 탑승을 위해 새벽 1시에 리무진에 몸을 실어야 했다"며 "일본까지 비행기 타고 이동하는 시간의 2~3배 이상을 인천공항을 오가는 데 써야 하니 짜증이 치솟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몸이 힘든 것은 차라리 참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차편이 없다는 것. 특히 귀국편 비행기가 밤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속수무책이다. 밤 9시를 넘어서면 리무진이 끊어지는데다, 서울역으로 가봤자 막차 시간 맞추기가 어렵고 표 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대구로 오는 KTX 마지막 열차가 밤 11시까지 있으니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밤 10시면 막차가 끊어지기 때문에 차편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며 "한 번은 서울역 근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내려왔고, 한 번은 강남버스터미널까지 다시 택시를 타고 이동해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새벽 3시가 넘어 도착한 적도 있다"고 푸념했다.

차라리 혼자 가는 출장은 마음이라도 편하다. 외국 바이어라도 '모셔야' 할 경우에는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장시간 항공탑승으로 심신이 지친 바이어를 또다시 버스나 승용차에 태워 대구까지 데려오면 녹초가 돼버리는 것. 이를 한 번 경험한 바이어는 불편함에 진저리를 치며 "다시는 지역 기업과 거래하지 않겠다"며 발길을 돌린다. 한 지역 상공인은 "늘 대구시가 대기업 유치에 목을 매지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나조차도 수도권으로 공장을 옮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누가 이런 불편한 곳에 투자를 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서민들이 타기에는 부담스런 KTX

동대구역에서 서울역까지 KTX요금은 3만8천400원. 왕복 하게 되면 8만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게다가 역까지 오고 가는 버스'택시비까지 포함한다면 한 사람의 서울 나들이에 드는 교통비만 10만원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서울과의 시간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다"고 한다. 과거에는 열차로 4시간가량이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이동 시간이 절반 이하(1시간 40분)로 단축됐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나들이 한번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이모(35) 씨는 "거의 모든 일이 서울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업계 정보를 듣고 관심 있는 IT 시연회 등을 보기 위해서는 서울을 자주 드나드는 일이 필수적이지만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수도권에 사는 인구비중이 높고 경제 중심지이다 보니 대부분의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0번의 행사 중 한 번만이라도 지방 사람들이 편하게 가볼 수 있도록 부산이나 대전에서라도 행사를 해주면 고맙겠다는 것이 그의 푸념이다. 교통비만 해도 만만찮다 보니 수십 번을 더 고민하고 한번 서울행을 결심한다는 것. 그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대구로 내려왔지만, 사실 이곳에서 뭔가 일을 도모하기는 너무 힘겹다"며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서울로 서울로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37'여) 씨는 "요즘 학생들은 일자리가 있건 없건 무조건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더라"고 했다. 워낙 경제기반이 없는 대구다 보니 변변찮은 일자리조차 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씨는 "학생들은 서울은 '기회의 땅'이라는 환상마저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심지어 커피숍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시원에서 새우잠을 자더라도 서울에 있으면 뭔가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것이 지금 학생들의 생각. 그만큼 대구 경제에 대한 암담한 현실인식과 탈대구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서울'수도권에서는 대구경북을 두고 "과거 한때 영화를 누렸던 곳"이라며 손가락질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그 당시 뭔가 챙겨놓기라도 했더라면 지금의 대구 경제가 이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한탄도 많다. 17년째 전국 GRDP 꼴찌에, 임금소득 최하위, 대구은행을 빼고는 매출 1조원을 넘는 기업체가 하나도 없는데다, 대기업 공장마저 하나 없는 것이 지금 대구의 현실인 것.

그렇다 보니 수많은 대학들이 포진해 있는 '교육도시' 대구에서 젊은이들을 보기가 어려운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다들 졸업과 동시에 '탈대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예 졸업 전부터 서울생활에 나서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취업준비생인 김성규(28) 씨는 "원서를 낼 만한 곳조차 없는 것이 대구의 현실 아닌가"며 "장남이다 보니 대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지만 이곳에서는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소연했다.

◆일자리도 없지만, 취업정보조차 없어

지방대생들은 두 번 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서울 출신 학생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은데다 정보전에서도 뒤처지기 때문이다. 기업 채용 시 가산점이 주어지는 취업설명회는 거의 서울을 중심으로 열린다. 서울 지역 주요 대학의 경우에는 취업시즌이면 한 달에 20~30여 차례씩 취업설명회가 열리지만 지방에서는 국립대에서 단 몇 차례 열리는 것이 고작인 것. 이 때문에 지방대생들은 취업설명회가 열릴 때마다 서울에 가거나 아예 서울에 머물면서 바늘구멍 같은 취업 기회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야 하는 현실이다.

휴학생 박지혜(25'여) 씨는 "인턴 기회를 잡거나 해외 봉사활동 등의 기회를 따내는데도 대구보다는 서울이 훨씬 유리하다 보니 아예 4학년이 되면 서울에 기거하면서 취업스터디를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나 역시 조만간 서울에 방을 하나 얻을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은 인구과밀화로 인해 각종 범죄와 주택, 교통문제 등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서울 해바라기' 현상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만 있다. 아파트 가격만 해도 대구의 3~4배에 육박해 월급쟁이가 평생을 모아도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곳이 서울이지만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부동산 가격이 언젠가 이를 만회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남편 직장을 따라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다는 이연주(33'여) 씨는 "아파트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워낙 가파르게 뛰어오르는 곳도 서울이기 때문에 허리띠 졸라매고 아파트 장만에 올인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근 대구시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20대 인구는 2006년 38만3천700여 명에서 지난해 34만1천300여 명으로 11%가 줄었고, 30대 인구는 같은 기간 43만4천600여 명에서 39만5천400여 명으로 9% 감소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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