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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마을 vs 문화공간… 범어지하상가 개발 '시끌'

市, 문화공간 계획에서 영어마을 급선회…문화계 "시민 편의공간 약속 저

1년간
1년간 '빈 점포'로 방치돼 있다가 영어마을로 조성될 것이라는 소문이 번져나가고 있는 대구 범어지하상가.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년 넘게 '애물단지'로 방치되고 있는 범어지하상가 활용방안을 두고 대구시와 수성구가 영어마을을 조성할 것이라는 소문이 번져나가고 있어 또 다른 상권침해 및 시민 무시 발상이라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당초 지하상가 관리를 맡은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이곳을 고가 상품을 판매하는 '명품 상가'로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대구시가 주변 상인들의 반발을 고려해 시민들이 찾는 문화공간이나 공공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밝힌 바 있다. 유망작가를 대상으로 상가 공간을 작업실 및 갤러리 공간으로 무료로 임대해주고 이를 통해 이 일대를 문화 존으로 육성해 국제적 명소로 키운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구시가 당초 계획을 변경해 상업적 성격이 짙은 영어마을 조성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 입장에서는 '영어마을'을 조성할 경우 관련 학원들을 유치할 수 있어 수억원의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실제 시는 최근 6억원의 임대료를 제안한 대형 학원에 절반 이상의 공간을 내주고 영어마을로 활용하고 나머지 공간에 상가와 문화공간으로 나눠주겠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길 기대했던 문화계 인사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남구문화원장과 대덕문화전당 관장을 지낸 이재녕 대구시의원은 "지난해 9월 김범일 대구시장으로부터 문화공간 활용안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고 올 2월에도 문화공간 활용안에 대해 재확인했다"며 "갑자기 대구시가 입장을 바꿔 영어마을 개발 계획을 추진한다는 언론보도를 접해 황당하다"고 했다.

이 의원은 또 "영어마을은 결국 '상업적인 목적의 영어학원을 유치하겠다'는 발상으로 말이 영어마을이지 영어학원가에 불과하다. 대구시가 이를 추진한다면 최소한의 시민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행위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대구시가 철학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다"며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너무 편하게만 행정을 하려다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하는 것 아니냐"고 혀를 찼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범어지하상가를 어떤 식으로 개발할 지 아이디어를 모으는 단계로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라며 "전국적으로 지하상권이 성공한 경우가 별로 없다. 지상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시설이 들어설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이 조만간 그려 질 것"이라고 밝혔다.

범어네거리 지하상가는 모두 72개의 상가가 설치돼 상업시설 면적만 2천256㎡에 이른다. 48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지난해 2월 준공됐지만 이후 단 한 곳의 점포도 임대되지 않는 등 도심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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