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지컬 들여다보기] 중년들을 공연장으로 부르는 추억 마케팅

과거 인기곡 사용한 작품 '광화문 연가' '젊음의 행진' 흥행대박

지난 연말 가요계에는 TV를 중심으로 '세시봉' 열풍이 불었다. 프랑스어 '세시봉'(C'est si bon)은 '매우 좋다'라는 뜻으로 서울에 있었던 음악감상실의 이름이기도 하다. 1970년대 거기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이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세시봉 친구들' 콘서트도 대성공을 거뒀다.

뮤지컬계에도 이와 비슷한 바람이 불고 있다. 1980'90년대 히트했던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쥬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와 '젊음의 행진'에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 연가'는 '난 아직 모르잖아요' '붉은 노을'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 고 이영훈 작가가 작곡하고 이문세 노래로 잘 알려진 노래 30여 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젊음의 행진'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신해철의 '그대에게' 등 여러 가수들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는 뮤지컬이다.

기존의 인기곡들을 뮤지컬 넘버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쥬크박스 뮤지컬로 불리지만, 단일 작곡가 혹은 단일 가수의 노래로만 구성한 '어트리뷰트(Attribute) 뮤지컬'과 스토리를 기본으로 그에 맞는 여러 가수들의 다양한 노래들로 구성한 '컴필레이션(Compilation) 뮤지컬'로 세분되기도 한다.

특히, 지난 주말 서울 공연을 끝낸 창작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이번이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흥행대박을 일궈냈다. 공연의 평가에 있어서는 '호불호'(好不好)가 갈리기도 하지만 창작초연 뮤지컬이, 그것도 대극장 뮤지컬이 초연에서 흥행에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 자체가 '이변'에 가까운 일이다. 대형 창작뮤지컬이 초연에서 수익을 남긴 사례로는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관객 동원에도 성공한 무비컬 '미녀는 괴로워' 정도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막을 올린 창작뮤지컬 '미션'이나 '천국의 눈물'이 수십억원의 제작비와 유명한 외국 스태프들을 투입하고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과 비교할 때 '광화문 연가'의 성공은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도 평가받을 만하다.

사실 대형 창작뮤지컬의 경우 초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쳐 초연 이후 자취를 감추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광화문 연가'는 작품의 수정과 보완을 통한 재공연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초연된 이후 4개 시즌을 거치면서 지속적인 수정'보완 작업을 해온 뮤지컬 '젊음의 행진'도 높은 유료 점유율을 기록하며 흥행몰이를 시작했다. 1980년대 인기 쇼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은 송승환, 왕영은 등 당시의 청춘 남녀 스타들이 MC로 활약했었고 송골매'소방차'김완선 등 당대 최고 인기 가수들이 섰던 무대이기도 하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이 인기 음악 버라이어티 쇼를 배경으로 1990년대 대표 만화캐릭터 영심이가 33세가 돼서 '젊음의 행진' 콘서트를 준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뮤지컬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이 흥행에 호조를 보이면서 대중가요를 뮤지컬 넘버로 하는 쥬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제작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소위 '된다' 싶은 장르에 제작자들이 몰릴 경우 자칫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이 양산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노래의 힘에만 기대어 작품을 만들 경우 어렵게 막을 올린 기존 작품들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유사 사례로 한때 유행했던 '악극'을 들 수 있다. IMF 외환위기라는 시대의 흐름과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호소했던 '악극'은 몇 작품이 성공을 거두자 아류의 악극들이 우후죽순처럼 제작되었다.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 공급은 전반적인 작품의 질 저하로 이어졌고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었던 시장도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접하는 창작뮤지컬의 성공 소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성공이 악극의 사례처럼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신중한 선택과 좀 더 높은 완성도와 진정성 있는 무대를 만들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원준 ㈜파워포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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