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대구 경제는 항상 우울했다.
수십 년간 지역 경제의 튼튼한 버팀목이 됐던 토종 기업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일자리가 줄면서 '퇴보'하는 도시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1990년대 중반 전국 주택공급 실적에서 1, 2위를 했던 청구와 우방이 무너졌고 대구 경제의 활력소가 됐던 섬유업체들 또한 잇따라 줄도산을 했다.
사라지는 토종 기업의 현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너스'란 브랜드로 지역 주택 시장을 지켜왔던 태왕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거쳐 M&A 됐고 지역 유통업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동아백화점은 이랜드 그룹에 매각됐다.
또 얼마 전에는 지역의 중견 건설사인 한라주택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물론 무너진 토종 기업의 뒷자리는 지역 경제에 상당한 상처를 안겨준다. 지역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토종 기업을 대신해 자리를 잡은 역외 기업들은 대구의 '돈줄'을 빨아 서울로 가져가고 있다.
대구의 GRDP는 항상 전국 꼴찌를 기록하고 있고, 20대 후반 인구의 수도권 유출 또한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얼마 전 발표된 전국 대도시 아파트 가격에서도 대구의 우울한 경제 지표는 그대로 드러난다. 2000년대 중반까지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대도시 중 가장 높은 아파트 가격을 유지했지만 3년 전부터는 광주를 제외하고 집값이 가장 낮은 도시가 됐다.
아파트가 재테크의 가장 큰 방법 중 하나고 유독 '자가 소유'의 개념이 강한 한국에서 집값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집값이 높은 도시일수록 성장 지표가 높은 도시가 되고 낮은 도시는 '미래'를 담보하기가 쉽지 않은 도시가 된다.
대구시가 10여 년간 '기업 유치'를 외쳐온 것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공단 조성에 목을 맨 이유도 이렇게 '쇠락'하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 또한 도시 성장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지역민들의 염원을 담은 목소리였다.
답답한 대구의 현실을 뒤집어 생각해보자.
지난해 여름 미국 남부 텍사스주의 오스틴을 취재차 방문했을 때 일이다. 시 상공회의소에서 내놓은 도시 홍보 자료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집값이 싸고 식음료 가격이 낮은 것을 그들은 '도시의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LA나 뉴욕에 비해 절반 수준인 주택 가격과 70~80% 수준인 식음료 가격을 나열하며 '삶의 질'이 높은 오스틴으로 오라는 홍보 문구였다.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쉬운 경제 지표가 뒤집어 보면 기업 유치에 유리하고 비슷한 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에게는 높은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미국식 역발상은 대구에서도 충분히 적용된다.
낮은 집값에다 전국 어느 대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중'고교의 학력 수준, 그리고 30분이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훌륭한 도시 교통망을 갖고 있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있고 앞산과 팔공산을 끼고 있어 자연 근접성 또한 훌륭한 도시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가장 경쟁력을 가진 대학 인프라도 강점이다. 4년제 대학과 전문대 졸업생의 질적 수준은 타지방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삶의 질'에 있어 필수적인 의료 수준 또한 전국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대구의 장점 중 가장 경쟁력을 가진 부분은 '가격'이다.
집값은 물론 의료비와 사교육비, 식음료 가격 등이 서울은 물론 부산보다 낮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더라도 대구에서는 적정한 수준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시나 기업이 발전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앞으로 도시의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삶의 질'은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구가 가진 역발상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고 설득에 나선다면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기업 유치에도 좀더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재협(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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