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만 되면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이다. 백설희 씨는 지난해 5월 5일 노래처럼 봄날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을 애잔하게 했다.
우리 가요 '봄날은 간다'만큼 많은 가수들이 부른 노래도 드물 것이다. 백설희에서 시작해 전제덕의 하모니카가 어우러진 노래까지 모든 연령대의 가수들이 불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불렀다 하면 모두 그 정서에 빠지는 묘한 가요다.
필자의 음악 재생 목록에는 서로 다른 버전의 '봄날은 간다'가 10여 곡이 들어있다. 백설희, 나훈아, 이동원, 한영애, 하춘화, 장사익, 오승근, 심수봉, 조용필, 김도향, 박은경, 최백호 등 한국가요사를 관통하는 명가수들의 곡들이다. 여기에 전혀 다른 멜로디지만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제곡으로 쓰인 김윤아의 노래까지 모았다.
우리가요 '봄날은 간다'는 현역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설문조사'에서 1위를 할 정도로 한국인 모두가 좋아하는 노래다.
남녀가 서로 다른 음색으로 부르지만 '봄날은 간다'는 기가 막히게 한결같은 정서를 준다. 꽃처럼 지고 만 짧은 봄의 아쉬움, 곧 다시 오지 않는 내 청춘에 대한 한이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2001년'사진)에서는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떠나는 할머니가 나온다. 노란 개나리를 뒤로 하고 양산을 든 할머니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는 가버린다. 굽이진 고갯길을 넘어가는 아련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아지랑이 같은 봄을 기다리며 살았을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가슴 아파하던 상우(유지태)는 은수(이영애)를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떠나보낸다. 가을과 추운 겨울을 이겨냈지만, 서럽도록 아름다운 봄날은 차마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다.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라는 노랫말처럼 봄은 청춘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늘 싱그러운 청춘들의 이야기에 봄과 꽃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이와이 수운지 감독의 '4월 이야기'(1998년), '하나와 앨리스'(2004년), 나카하라 슌 감독의 '벚꽃 동산' 등 모두 새싹처럼 풋풋한 청춘들의 달콤한 꿈을 그리고 있다.
꽃은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것은 순간(최영미 '선운사에서')이다. 내 청춘의 봄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욱 아련한 것이 봄날이 가고 있는 지금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