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반도에 갖가지 이상기후가 나타났다. 새해 벽두부터 기상이변을 예고하듯 폭설이 내렸고, 봄철에는 이상저온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줬다. 여름에는 폭염과 열대야로 잠 못 이뤘고, 가을에는 태풍이 휘몰아쳤다. 겨울에는 한파와 폭설로 곤욕을 치렀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유독 여러 유형의 이상기후가 현실화되면서 한반도가 '이상기후 백화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게다가 백두산 화산 폭발 위험성까지 제기되면서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는 기온 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래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된다.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지구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탓이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기상이변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남반구에서는 집중호우가 발생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고, 러시아에서는 가뭄과 폭염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파, 폭설, 폭염, 태풍, 황사, 이상저온 등 과거에 좀처럼 경험할 수 없었던 이상기후가 지난 한 해 동안 계절별로 잇따라 나타났다.
◆황사의 봄=이상저온과 그에 따른 일조량 부족, 강력한 황사 등이 발생했다. 3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38일 중 29일이 평년보다 기온이 낮았다. 특히 4월 28일은 전국의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7.9℃나 낮았다. 4월 평균기온도 9.9도로 평년보다 2.1도 낮아 전국적인 기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낮았다. 이상저온에 따른 일조량 부족 현상도 나타났다. 봄철 일조시간은 508.7시간으로 평년보다 153.6시간이 적어 평년 수준의 67.8%에 머물렀다. 반면 강수일수는 34.7일로 평년보다 9.9일이 많아 1973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월동작물의 생육이 부진했고, 과수 꽃눈이 고사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줬다. 봄옷의 매출도 2009년에 비해 많이 감소했고, 봄꽃 축제 여행 상품 매출이 20%나 떨어졌다. 연근해 수온도 떨어져 고등어 등 난류성 물고기는 평년보다 절반밖에 잡히지 않았고, 대구 등 한류성 어종은 전년보다 7배나 많이 잡혔다.
전례 없는 짙은 황사도 관측됐다. 3월 20일 황사 계기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짙은 황사가 흑산도에서 관측됐다. 이날 시간당 평균 황사농도는 무려 2천712㎍/㎥까지 치솟았고, 남부지방도 대부분 2천㎍/㎥를 넘는 짙은 황사가 관측됐다. 최근 들어 황사의 출현 빈도가 더 잦아지고 있고, 과거에 없었던 11월과 12월에도 황사가 나타나고 있다.
◆찜통 여름=폭염과 열대야가 어느 해보다 심했다. 2010년 폭염은 6월 3일부터 9월 21일까지 지속됐다. '폭염주의보'는 낮 최고기온이 32~33도 이상인 경우가 2일 정도 지속될 때 내려지고, '폭염경보'는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경우가 2일 이상 지속할 때 내려지는 특보다. 폭염으로 지난해 에어컨과 선풍기의 매출이 각각 120%, 75%가 증가했고, 전력 사용량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야간 최저기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도 기승을 부렸다. 지난해 열대야 일수는 이전 10년 동안(2000~2009년)의 평균 열대야 일수보다 월등히 많았다. 8월은 9.2일로 3배나 많았고, 9월에도 열대야가 자주 나타났다. 서귀포(54일)와 제주시(40일), 부산(37일), 광주(34일), 포항(31일) 등 남부지방에서 유독 자주 나타났다. 이 같은 열대야는 낮에 강한 햇빛으로 데워진 지면의 열기가 밤에 우주로 방출돼야 하는 데 공기 중에 포함된 수증기가 열기를 흡수해 다시 지표로 보내기 때문이다.
◆물난리 가을=강력한 태풍에 따른 집중호우, 가을 황사 등이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 강력한 태풍이 자주 우리나라에 상륙해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3개의 태풍 중 9월 1일 발생한 곤파스는 중부지방을 관통하면서 1천600억원가량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또 9월 21일 수도권에 259.9㎜의 집중 호우가 내려 1908년 기상관측 이래 9월에 내린 비로는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1984년 9월 1일 268.2㎜였다.
지난해에는 전례 없던 가을 황사까지 발생했다. 11월 11일 서울의 황사농도가 역대 최고인 1천191㎍/㎥까지 치솟았다. 또 12월 11일까지 한 달 동안 4차례에 걸쳐 황사가 나타났다. 11월과 12월 황사 일수는 각각 2.5일, 2.6일로 최근 10년의 평균(각각 0.4일, 0.7일)보다 월등히 많았다. 이 같은 가을 황사는 황사 발원지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북부 지역의 기후가 과거와 달리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눈폭탄 겨울=삼한사온이라는 말은 먼 과거의 옛 이야기가 됐다. 올 1월에도 한 달간 한파가 지속됐다. 1월 16일 아침 최저기온이 서울 -15.8도를 기록했다. 대구는 -13.1℃로 1981년(-13.2도) 이후 가장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고, 울진도 -14.0도를 보여 30년 만에 최저기온을 나타냈다. 2009년과 지난해에도 이상한파가 몰아쳤다. 기상청 관계자는 "북극의 온도가 예년보다 10도 이상 높아지면서 겨울철 북반구의 대기 흐름에 이상이 생겨 극지방의 차가운 제트기류가 남해했기 때문"이라며 "올해도 한파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설도 나타났다. 지난 1월 11일 강릉과 동해에 80cm가 넘는 눈이 내렸고, 울진에는 52cm가 쏟아졌다. 앞서 3일 포항에 52㎝의 눈이 내려 1942년 2월 포항지역 기상관측 이래 69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에도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이에 대해 정해순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장은 "기온 상승이 전 세계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는 등 한반도의 기후변화가 현저하게 눈에 띈다"고 말했다. 한 기상전문가는 "한반도는 토네이도를 빼놓고는 모든 재해가 일어날 수 있는 기상변화의 취약지역이다. 전례 없던 이상기상이 빈발하는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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