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감독 유중일 <하>

어린아이가 어른 못지않은 세련된 행동을 하면 흔히 '예쁘다'는 표현을 한다. 초등학교 때 포항에서 대구로 전학 온 류중일의 포지션은 포수였는데 류중일이 그랬다. 작은 키에도 폼이 참 예뻤다.

대구중으로 진학해서도 여전히 포수였는데 당시 대구중 야구부에는 작은 키에도 야구를 예쁘게 하는 선수가 세 명이 있어 '예쁜이 삼총사'로 불렸다.

지금의 대구고 박태호 감독과 후에 한양대로 함께 간 김윤영이 삼총사에 포함됐다. 류중일은 2학년 때 선배들의 타격 연습 중 우연히 유격수 자리에서 수비하게 되었는데 그 동작이 너무나 세련되고 예뻐 그만 감독의 눈에 쏙 들고 말았다.

"너 내일부터 유격수 연습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새로운 국가대표 유격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경북고로 진학해 졸업을 앞둔 3학년 때의 예쁜 일화도 있다. 동창회에 참석한 한 선배가 조용히 불렀다. 고교야구에서 4관왕의 주역이 된 류중일은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다.

"너 정말 마음에 든다. 야구를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할 수가 있니? 여드름은 좀 있지만 뭐 어때. 내 딸 줄 테니 사위 하자."

호탕한 웃음 속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10년 후 28세가 되던 해 류중일은 그 선배의 딸과 결혼했다.

프로선수 생활을 끝내고 코치가 된 류중일은 전편에서 얘기한 세 번의 위기를 넘겼다. 그 와중에서도 연고 출신의 감독을 물색하던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는 내심 류중일 코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10년 선동열 감독과 재계약하기 전에 프런트는 이만수 코치를 감독으로 영입하는 방안과 내부에서 감독을 발탁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했는데 이때 내부 발탁 안으로 류중일 코치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능력은 코치 경력과 함께 긍정적인 테두리에 있었다.

그런데 선수 시절부터 함께해 온 류중일 코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을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과 거침없는 표현이 문제였다. 감독으로서 매스컴이나 대외관계에서의 세련미가 약하다고 판단해 순위가 밀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구단의 환경과 정책이 바뀌자 오히려 그는 1순위로 올랐다.

승부사의 기질이 무엇보다 우선이었고 어려움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는 성격과 뒤끝 없는 결단력과 소통 능력이 부각되었다.

돌이켜보면 류중일 감독의 삶은 야구와 함께 끊임없이 점지된 인연의 연속이었다. 유격수를 맡게 된 동기도, 운명 같은 결혼도, 감독의 임명도 이미 점지된 인연이었던 셈이다. 인정을 받았으니 인연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미 준비된 사람처럼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준우승의 성적이나 어느 날 갑자기 발탁되었다는 부담도 그의 성격만큼이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누가 알겠는가? 예쁜 야구로 감독의 마음에 들었고 여드름이 얼굴에 가득해도 장인의 마음에 들었던 것처럼 반 박자 빠르고 다이내믹한 멋진 야구로 팬들의 마음을 또 사로잡을지 말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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