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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윤봉길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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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현재 루쉰 공원) 의거 당일,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와 함께 아침을 먹은 사람은 백범(白凡) 김구였다. 백범은 그날 윤봉길이 마치 논밭으로 힘든 일을 하러 가려고 농부가 자던 입에 일부러 밥을 넣듯이 했다고 '백범일지'에 적었다. 몇 시간 후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윤봉길은 태연히 농부처럼 아침밥을 먹은 것이다. 또 한 명의 건장한 청년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생각한 백범은 정작 아침밥을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직감했다. 청년의 너무나 태연한 모습에서 이번 거사(擧事)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란 것을.

당시로부터 약 2천100여 년 전,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 형가(荊軻)가 길을 떠났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진시황을 알현하게 되지만 거사에는 실패한다. 물론 천하제일 자객답게 형가는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문제는 같이 간 부사(副使) 진무양이라는 사람이었다. 형가는 이 사람의 그릇을 알고 있었으나 시간이 촉박해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시황의 옥좌를 향해 계단을 오르던 진무양의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촌놈이 천자를 배알한 적이 없어 저렇게 떨고 있습니다"라고 형가가 변명을 했지만 이미 속내가 노출된 상태였다. 이런 거사가 성공할 리 만무하다.

이처럼 정중동(靜中動)의 담력이 없으면 대사를 그르치게 된다. 대장부는 겉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로지 행동으로 답변할 뿐이다. 목숨을 초월한 매헌의 초연한 기개는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힘든 사례다.

이런 매헌이 단순한 투쟁적 독립투사가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폭탄 투척 이전에 국내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손수 만든 '농민독본' 제1권이 최근 발견된 것이다. 자음과 모음을 소개하고 한글 맞춤법을 설명한 것으로 봐서 농민과 청소년에게 문맹을 깨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노력이 역력한 유물이다. 한글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독립운동인데 오죽 속이 터졌으면 피로 복수하는 '저항'의 길을 택했을까.

붓을 내던지고 결연히 폭탄을 손에 쥔 매헌 윤봉길, 그 DNA를 물려받아 우리는 지금 세계 경제대국을 향해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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