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서 논술 톺아보기] 학교 풍경에서 찾은 논술의 힘 - 주장과 논거②

'논술'하면 비판적 사고란 말을 떠올린다. 논리적인 글쓰기라고도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논술적인 사고에는 비판보다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오히려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논술은 세상과 내가 나누는 대화이며 대화의 대상인 세상은 비판과 논리만이 아닌 합리적인 삶의 양식과 결부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삶은 대상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앞서 현재의 상황과 대상에 대한 생각을 점검하고, 적절한 근거를 찾아 말하는 습관을 생활 속에서 길러야 한다. 생활 속에 논술이 있다는 말이다. 아래는 논술연수나 논술수업을 할 때마다 들려주었던 학교 풍경의 한 부분이다. 이 사례는 논술적인 사고가 비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나 많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논술교육이 왜 필요하며 그것이 교육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할 수 있다. 풍경으로 들어가 보자.

오후 6시, 한 학생이 교무실에 담임을 만나기 위해 들어왔다. "선생님, 오늘 자율학습 빼 주세요." 교사가 묻는다. "왜?" 학생은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다. 교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왜냐니까?" 학생은 머뭇머뭇하다가 불쑥 말한다. 얼굴에는 왜 허락해주지 않느냐는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냥요." 교사는 여전히 높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냥 올라가거라. 이유 없이 자율학습을 뺄 수는 없어." 학생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나간다. 교무실 닫히는 소리가 제법 크다. 선생님의 마음도 편할 리가 없다.

다른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오늘 자율학습 못 하겠어요. 집에 보내주세요." "왜?" "공부하기 싫어요." 교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몇 명이겠니? 다들 힘들어도 공부하는 건 지금 그래야 할 때이기 때문이잖아. 지금 힘들게 공부하면 좋은 대학교 들어가고 그 다음 네 삶이 행복해질 수 있잖니?" "그건 선생님 논리잖아요. 난 지금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자율학습이잖아요. 자율학습은 자율이잖아요." 교사의 얼굴은 더욱 굳어진다. 대응할 논리가 사실 없다. 무조건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래. 집에 가거라." 학생은 무표정하면서도 의기양양하게 교무실을 나간다. 교사는 흡연실로 들어가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마음이 쓰리다.

또 다른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오늘 자율학습 빼 주세요." 교사는 묻는다. "왜?" 학생은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한다. "오늘 배가 너무 아파요." 교사도 나직하게 대답한다. "그래? 많이 아팠구나. 그래도 조금 참아 보아라. 양호실에서 약 구해다줄까?" 그러자 학생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손은 배 위에다 올리고 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교사는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 "오늘 집에 가서 푹 쉬고 다 나아서 내일 건강하게 보자. 알겠지?" 학생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교무실을 나간다.

또 한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피곤한 얼굴이지만 미소까지 짓고 있다. "선생님, 오늘 자율학습 좀 빼 주세요." 교사가 묻는다. "왜?" 학생은 담담하지만 또렷하게 대답한다. "어제 수행평가 준비하느라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어요. 오늘은 하루 종일 힘들었어요. 집에 가서 쉬면서 텔레비전도 좀 보고 일찍 자야겠어요. 그 대신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공부할께요. 오늘만 좀 보내주세요." 교사는 편안한 목소리로 허락한다. "그래. 오늘은 좀 쉬고 내일부터 잘 하려무나." 허락을 받고 나가는 학생이나 허락해 준 교사나 모두 편안한 얼굴이다.

위의 이야기는 오늘도 일어나고 있을 법한 고등학교 교무실 풍경이다. 네 번째 사례가 가장 긍정적일 것 같은데 일상적인 교무실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풍경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사례이다. 아이들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며 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고려하지 않는다. 나아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가장 큰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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