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일 칼스루에국립극장과 비교해 본 한국 극장의 현실

극장 직원수 대구오페라하우스의 10배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페라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 중 1막과 2막 사이 휴식 시간의 독일 칼스루에국립극장 로비 모습. 관객들은 곳곳에 앉아 음료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독일 칼스루에국립극장의 악보 보관실.
독일 칼스루에국립극장의 악보 보관실.

지난달 30일과 이달 4일 대구국제오페라조직위원회(위원장 김신길)의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이 열린 독일 칼스루에국립극장은 한국의 공연극장과 많이 달랐다. 이 극장은 전속 오페라단'극단'오케스트라'합창단'무용단'배우 등 공연을 위한 팀을 비롯해 공연지원을 위한 전문 크루(조명팀, 무대설치 및 전환팀, 음향팀)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전속 의상팀과 분장팀, 무대제작시설 등 작품제작 기반 역시 두루 구비하고 있다. 이 정도이다 보니 극장에 소속된 직원만 650여 명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50여 명)보다 10배 이상 많다.

◆공연 위한 완벽한 시스템

잘 짜여진 시스템과 전문인력, 각종 기계 장치 덕분에 칼스루에극장의 공연무대 설치와 철거, 변환 등은 빠르고 정교하다. 대구오페라축제위원회의 '나비부인' 첫회 공연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오후 8시에는 오페라 '돈 조반니' 공연이 칼스루에극장 대극장에서 열렸다. '돈 조반니' 공연 시작 6시간 전인 오후 2시까지는 대구 오페라팀이 다음 날 공연에 앞서 무대 세트와 조명 등을 갖춘 종합 리허설을 펼쳤다. 리허설이 끝나고 불과 6시간 만에 '나비부인' 무대를 철거하고, '돈 조반니' 무대와 조명을 설치해 공연을 치른 것이다.

칼스루에극장이 이처럼 신속하게 공연에 필요한 무대와 장치를 철거하고 설치할 수 있는 것은 54명의 숙련된 크루가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웬만한 극장의 경우 10명 안팎의 크루가 임시 고용돼 휴식 없이 철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다양한 무대변환장치, 대규모 무대보관 시설 덕분에 신속한 이동과 보관도 용이하다. 또 극장 내 철공소, 목공소, 의상제작실, 분장실, 조형 제작실, 신발 및 가발 제작실 등이 있어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무대와 소품 제작이 가능하다.

출연 가수와 스태프를 위한 공간과 배려도 철저하다. 한 예로 캐스팅된 아역배우를 위한 전속 '돌봄이 직원'이 있다. 이 직원은 아역 배우의 스케줄, 극장 내 생활, 귀가 등을 모두 챙긴다. 한국팀의 오페라 '나비부인'에도 아역배우가 출연했는데, 이 어린이의 귀가시간(오후 11시)을 고려해 2막과 3막 사이에 인터미션(중간 휴식)을 없애야 했다. 어린이 보호는 물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철저한 것이다.

◆객석 많으면 오히려 손해!

칼스루에국립극장 대극장은 객석이 1천50석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 1천500석(보통 1천300여 석 사용)에 비해 적다. 그러나 무대와 백스테이지는 대구오페라하우스보다 훨씬 넓다. 백스테이지 공간이 넓으면 무대 철거와 설치를 비롯해 공연 중 무대전환이 유리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대 연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칼스루에국립극장 기술감독 랄프 하슬링어 씨는 대형 극장임에도 객석이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객석 수가 너무 많으면 자리를 다 채우기 힘들다. 빈 자리가 생기면 출연 배우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자연히 관객의 감동이 작을 수밖에 없다"며 "칼스루에국립극장은 객석을 늘려 영업성을 높이기보다 적절한 객석 유지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감동의 크기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예술적 디자인으로 객석 의자를 구석구석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흔히 좌우대칭을 정확하게 맞추는 우리나라의 극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또 앞뒤 객석 간격이 유럽인의 체형을 고려할 때 그다지 넓지 않고(85㎝), 객석 중간에 통로가 없지만 '배려'를 통해 불편을 해소한다. 인터미션 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리에 남아 있는 관객들은 일어선 채 대기하거나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통행에 불편이 없는 것이다.

이 극장의 또 하나 커다란 특징은 전체 극장 면적의 30%를 차지하는 로비공간이다. 로비는 다양한 동선을 따라 곳곳에 형성돼 있으며 간이 테이블, 소파 등이 마련돼 있다. 공연 시작 전이나 인터미션 때 관객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공연을 훨씬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공연장의 로비는 대부분 '로비'가 아니라 '복도'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협소해 공연 시작 전에 잠시 대기하거나, 공연이 끝나면 우르르 빠져나가는 통로 역할에 불과한 실정이다.

 ◆수익사업 아닌 문화사업

2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칼스루에국립극장의 1년 예산은 약 650억원(국비 50%, 시비 50%)이며, 이 예산으로 오페라, 발레, 연극을 연간 40∼50회 정도 연다. 무대, 의상, 분장, 조형 등 각종 제작비와 650명의 인건비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매년 650억원을 투입해 이 극장이 얻는 매표 소득은 연간 약 32억원. 한국에서라면 납득하기 힘든 적자 규모이지만 이곳 시민들은 이를 단순히 '수익문제'로 계산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독일 내 400여 개 극장 중에서 20위 안에 드는 훌륭한 극장이 칼스루에에 존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이 극장이 뿜어내는 '예술의 향기'를 '매표 액수'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칼스루에국립극장의 연중 예산 650억원은 최근 몇 해 동안 변함이 없었다. 이 극장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이 이상은 유지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처럼 안정적이고 집중적인 예산 덕분에 이 극장은 매년 회계연도 시작 5개월 전에 이미 다음 시즌 공연작품과 연출자, 출연진 등을 모두 정할 수 있다. 그만큼 장기적인 목표와 여유를 갖고 작품을 제작하는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홍보도 용이하다. 일찌감치 다음 회계연도 공연계획표가 나오기 때문에 굳이 요란한 광고를 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오는 것이다. 대구의 극장들이 예산확보에 시달리고, 공연이 임박해서 허겁지겁 작품을 제작해야 하는 환경과 다른 모습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는 매년 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제작이나 무대, 의상 보관시설은커녕 전속 오케스트라도, 합창단도 없다. 공연을 돕기 위한 무대 크루 역시 공연 때마다 급조해서 쓰는 형편이다. 이 같은 상황은 대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 극장의 현실이다.

독일 칼스루에에서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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