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자식 사랑

"난로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마루를 비추고 어둠이 짙게 서린 뜰에는 늦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급하게 달라지는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비추어 볼 때 분열기가 특별히 못할 짓 한 건 하나도 없었다." "내 눈에는 그의 행동이 상사에 대한 아부로 비쳤다." "글씨를 그렇게 흘려서 쓰면 성의가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 쉽다."

앞서의 예문에 나오는 '비추다'와 '비치다'에 대해 알아보자.

'비추다'는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 거울이나 물 따위에 모습이 나타나게 하다라는 뜻의 타동사로 '비추어(비춰)-비추니'로 활용한다. "햇빛에 필름을 비추어 보았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다."로 쓰인다. '비치다'는 빛이 나서 환하게 되다, 빛이 반사하여 거울이나 수면에 모양이 나타나 보이다라는 뜻의 자동사로 '비치어(비쳐)-비치니'로 활용한다. "모시 적삼 아래로 속살이 비치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으로 쓰인다.

'비추다'와 '비치다'에 '-지다'가 붙을 때는 어떨까. '비쳐지다'는 '비치어(자동사)+지다', '비춰지다'는 '비추어(타동사)+지다'의 형태이다. "한강에 비쳐진 황금빛 노을이 장관입니다." "잘못 비쳐진 모습, 노래로 만회하고 싶어요." "연예계에서도 토끼띠들은 톡톡 튀는 매력을 가진 스타들로 비춰진다." "타자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볼 때 객관적 자기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외국인의 시각에 비춰진 한국의 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일 터이다."로 쓰인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피동을 뜻하는 '-지다'는 '비추다'처럼 타동사와 결합하는 것이 원칙이고 '비치다' 같은 자동사와 결합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한석봉의 어머니' '맹자의 어머니'처럼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위한 어머니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자식은 자신의 생명과 같아서 누구나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애착이 지나치면 오히려 자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부모의 소유물이 되면 그 아이들 인생도 왜곡되고 만다. 옛날 어른들이 한 말 가운데 사람은 제 먹을 것은 타고 난다고 했듯이 인간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났을 때는 뜻이 있고 보살핌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낳았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자녀들의 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인생 전체를 두고 자녀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학생인 자녀가 공부 잘할 때 예쁜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지만 공부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전부가 아니란 걸 우리는 겪어서 알고 있지 않은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부모인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자녀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한번 생각해 보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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