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논술 톺아보기] 설득의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 - 주장과 논거③

지난주에 소개한 고등학교 교무실 풍경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대화 자체가 단절되어 서로의 감정만 상한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사례이다. 아이들은 합리적인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 당연히 자신의 주장만 하고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말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목소리만 크다.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마음 속의 불만도 커진다.

두 번째 사례는 학생이 교사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 설득은 상처만 남은 영광이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설득은 성취감보다도 더 큰 상처를 만든다.

요즘 이런 현상이 부쩍 많아졌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주장은 근거를 말하지도 못한 첫 번째 아이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사실 교사가 허락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학교 사회라는 공간에 내재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불문율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한 학생의 언어는 설득이라기보다 악의적인 공격에 가깝다.

그나마 세 번째 학생은 교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근거는 합리적인 영역이 아니다. '배가 아프다'는 사실이다. 근거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사의 마음에 존재하는 측은지심을 자극해서 감정과 감정이 만난 것이다. 사실 학생이 정말 아팠다면 문제가 없지만 꾀병을 부렸을 수도 있다. 나아가 교사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학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학생은 교사에게 거짓을 말한 셈이다.

반면에 네 번째 아이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유를 제시했다. 정직하면서도 논리적이다. 근거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이런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진솔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학생이 '오늘 쉬고 싶으니까 집에 보내 달라'고 한 것인데 교사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네 가지 사례 모두 주장 자체는 명료하다. '자율학습을 빠지고 싶다'이다. 즉 네 명의 학생이 주장하는 바는 같다. 같은 주장을 내세웠는데도 교사의 반응은 아주 다르다. 그 차이는 주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근거와 맥락에서 드러난다. 첫 번째 학생은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다. 따라서 당연히 허락을 받을 수 없다. 두 번째 학생은 근거는 명확했지만 더 본질적인 전제에서 벗어났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는 성취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내면적으로 더욱 강화된 갈등의 골이 만들어진다. 세 번째 학생은 근거는 있지만 그 근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단지 근거를 드러내는 행동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교사가 허락한 이유는 근거 때문이 아니라 학생과의 관계 때문이다. 하지만 논술고사의 당사자인 수험생과 대학논술고사 출제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일 뿐이다. 또한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는 논술고사의 질문을 통해, 수험생은 거기에 대한 논술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뿐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으로 출제자를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논술고사 채점자는 시험지에 남은 눈물 자국에 반응하지 않는다.

반면에 네 번째 경우는 다르다. 학생의 근거는 '지금 피곤하다'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지금 피곤한 이유를 '어제 수행평가를 한다고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로 제시했다. 나아가 '쉬면서 충전하여 내일부터는 더욱 열심히 하여 선생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논술이다. 이러한 언어 행위는 충분히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학교 논술반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이런 곳에서 감지된다.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현재를 드러낸다. 논술 수업을 실시하기 전의 학생들은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유형이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참가한 텔레비전 정책 토론회를 보고 있으면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사례만 본다. 그들에게는 주장만 존재하고 그 주장을 타당하게 만드는 근거가 없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 당연히 자기 말만 하고 타인의 주장이나 근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설득의 힘은 진실한 마음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거기에서 나온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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