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식농사

어릴 때 부모님이 '자식은 농사와 같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그저 농사처럼 오랫동안 정성을 필요로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자식 셋을 키우면서 깨닫게 된 것은, 부모의 역할이란 그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아이들은 볍씨처럼 스스로 크고 자란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이혼 소송을 의뢰한 부인이 자기 아들을 만나달라고 요청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녀의 아들은 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뼈아픈 시간을 보낸 때문인지 철이 들어 있었다. 고개를 숙인 아들은 엄마를 먼저 걱정하였고 오히려 엄마를 도울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깝다고도 하였다. 내면 깊숙이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난 대견한 그 녀석의 어깨만 두드려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아이보다 훨씬 늦게 철이 든 듯하다. 어머니는 새벽 달이 기울기도 전에 아침밥을 지으셨다. 평생 농사를 지으시며 부지런하신 이유도 있었지만, 늘 새벽 첫차를 타고 등교하던 나의 유별난 종달새 고집 때문이었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늘 머리맡에 밥상을 차려두고서야 혼곤히 잠든 나를 깨우셨다. 아들이 5분이라도 더 자기를 바라셨던 마음인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은 뵐 수 없지만, 지치고 힘들 때마다 어머니의 불면의 새벽을 떠올리며 새로운 힘을 얻곤 한다.

아버님을 추억하자면 끝없는 이해심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어릴 때부터 나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심부름이나 잘하고 적당히 공부하는 척하며 부모님 속 썩이지 않은 착한 아들이었다고, 오랫동안 도취 속에 빠져 있었다. 어린 자식 놈이 잔꾀나 부리고 부모 눈을 피해 눈치만 늘어가는 것이 한눈에 보였을 텐데도, 아버님은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시거나 나무라시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스스로 깨우치기를 오래오래 기다리셨던 것이다.

'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고,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들이 저마다 자기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을 보자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춘기는 파충류의 뇌'라고 되뇌어보며 모른 척 마음 닦기를 반복하지만, 속이 곪아터져 내 분을 못 이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의 부모님처럼 자식을 한결같게 대하기가 너무 어렵고 때로는 내 풀에 지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닷없는 아이들의 철든 모습에, 달빛이 쏟아지듯 희망에 들뜨고 힘든 일상을 잊기도 한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도 볍씨처럼 스스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자식은 농사다'.

이석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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