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믿을 수 있는 물을 마시기 위한 노력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서 실시한 '의학분야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계기가 무엇인가?'라는 설문에서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2010년 유엔 총회는 깨끗한 물과 공중위생에 대한 권리를 인권으로 간주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안전하고 깨끗한 식수와 공중위생에 대한 권리는 삶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데 필수적인 인간의 권리임을 선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수돗물이 인류의 평균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 했다고 볼 수 있으며, 깨끗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주고 있다.

우리는 과거부터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수질오염 문제를 겪어 왔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깨끗한 물의 공급이 당연시되는 시대까지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돗물의 질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남아 있다. 일반 음료수 만큼이나 비싼 생수가 불티나게 팔리고, 정수산업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깨끗한 물을 확보하여 국민에게 충분한 물을 공급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해결할 과제가 되었다.

깨끗한 물은 말처럼 쉽게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정수된 수돗물은 약 55여 가지 항목의 먹는 물 기준 수질검사를 통과해서, 더욱 더 안전하고 깐깐한 물이 수도관을 통해 각 가정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고도의 정수처리 기술을 거친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수돗물의 가격은 얼마일까? 환경부에서 발표한 상수도통계에 따르면 2009년 전국 평균 수도요금은 t당 609.9원에 머무른다. 이는 미국에 비해선 2.2배, 일본에 비해선 2.5배, 독일에 비해선 무려 6.6배 정도나 저렴한 가격이다.

재정여건에 따라 시도별 수도시설 투자현황도 큰 차이가 난다. 서울시와 같이 재정여건이 따라주는 특별'광역시는 노후 수도관 설비 교체 및 장비 도입 등 지속적인 투자로 수돗물 누수를 줄이고 유수율(생산된 물이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비율)을 높여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분분의 지자체는 시설 투자를 할 여력이 없다. 원가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도요금으로 무슨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는가.

문제는 재원의 마련이다. 우리나라 물값에는 수돗물 서비스 향상을 위한 투자 재원이 대부분 반영되어 있지 않다. 단지, 댐, 수도시설과 같은 기본적 시설의 관리를 위한 비용만이 일부 회수되고 있을 뿐이다. 2010년 기준 물값은 생산원가의 약 80% 수준으로 당장의 현상유지를 위한 비용으로만 지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투자할 돈이 없는데 더 나은 양질의 물이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기본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물값이 인상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물값은 그 어떤 재화보다도 저렴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구입하는 생수, 콜라, 우유, 맥주 등의 가격이 수돗물 값과 비교해 보면 몇 천배 비싸지만 당연스럽게 지불하고 있다. 물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품이므로 무조건 싸게 공급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벗어나야 할 시점이 되었다.

계속 싼 물값의 환상에 빠져 투자를 위한 대비를 미루기만 하다가는 미래의 어느 날, '기름보다 몇배 비싼 정수기 물'을 구입해야 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이순화(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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