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업고
골목을 다니고 있다니까
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기가 잠이 들고는
내 등때기에 엎드렸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방에 재워 놓고 나니까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1972년 5월)
이후분(문경 김룡 6년)
5일은 어린이 날. 그날이 휴간이어서 한 주일 늦지만 동시 한 편을 보내드리겠어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하고 어린이가 어린이답도록 해줘야 하겠죠. 이 동시는 지금부터 40년 전 당시 문경 김용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쓴 글입니다. 요즘 기교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동시가 많지만 아무 수식 없는, 그래서 더 가여운 여덟 행의 물맛 같은 시를 한번 보실래요?
제 동생을 업어 본 적 있는 아이, 업어 길러 본 어머니들은 알 것입니다. 업는다는 일이 얼마나 따뜻한 고통인가를. 업는다는 행위는 육체의 수고를 깔고서, 업는 사람과 업히는 이의 말없는 교감이 등을 통해 흐르는 참으로 인정적인 동작이지요. 등과 심장이 겹쳐진 지점에서 흐르는 뜨거운 강물, 어떤 동작이 이보다 더 사랑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업은 채 골목을 다니다가 가까스로 잠재운 아기를 방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얼마나 참았으면 등때기 하나가 확 없어진 것 같을까요. 그 말, 정확하고 깊고 솔직합니다. 무거웠다느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느니, 이런 자기수고를 드러내는 대신 그저 등때기가 없어진 것 같다니요. 자기 견딤이 있고 사랑이 있는 마음 근저, 고통을 감출 줄 아는 저 어린 시인의 심연이 짜안하도록 존귀합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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