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길기행] <21>칠곡 '박해·순교의 길'

박해 피해 오갔던 신앙의 길…묵상·자기성찰 순례길로 부활

한티순교성지에 옛 모습 그대로 조성된 공소.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 성지에 있는 대구대교구의 첫 본당터.
한티순교성지에 옛 모습 그대로 조성된 공소.
한티성지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은 한티성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 성지에 있는 대구대교구의 첫 본당터.
한티성지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은 한티성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요람지라고 할 수 있는 신나무골성지, 한티순교성지, 왜관의 가실성당과 성베네딕도왜관수도원….

칠곡은 천주교 유적지가 유난히 많다. 특히 칠곡군 내에 산재한 신나무골~동명성당~성가양로원~한티순교성지를 잇는 길은 한국 천주교의 순교사를 되살리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 등을 위한 순례길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현재 칠곡군은 옛 천주교인들이 피의 박해를 피해 험난한 산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면서 수없이 오갔던 신나무골~한티성지를 잇는 21.5㎞ 구간의 옛 순례길인 '사랑의 숲, 희망의 고갯길' 조성사업에 착수한 상태다.

을해박해(1815년)와 정해박해(1827년) 때에 이르러 경북지역으로 피신해 살던 신자들이 체포됐고, 온갖 고문의 역경과 굶주림에도 끝까지 배교(背敎)하지 않거나 옥사하지 않은 신자들은 대구감영으로 이송돼 수감됐다.

이때 대구감영에 갇힌 신자들의 가족과 형제들이 그들과의 연락과 옥바라지를 위해 감옥과 비교적 가깝고 안전하다고 판단한 한티와 신나무골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다.

◆영남지방 선교의 요람 신나무골

순례길은 '신나무골' 성지부터 시작된다. 지금의 신나무골은 한티에 비해 찾기 쉬운 곳에 있다. 4번 국도상에 위치한 신동초등학교에서 왜관 방향으로 약 3.3㎞ 정도 가면 영남지방 선교의 요람인 신나무골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유서 깊은 교우촌인 이곳은 좁게는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를 중심으로 한 '신나무골'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도암, 완정, 왜관의 가실, 동명의 어골 등 인근의 신자촌을 모두 포함하기도 한다.

대구에서 서북 방향으로 20㎞가량 떨어진 신나무골은 박해시대 교우촌으로서 필수적인 조건인 외지고 깊숙한 산골이라는 점 외에도 대구 읍내에서 하루 거리라는 점에서 교통의 편리성 또한 교우촌으로서의 장점이었다.

지금은 도로사정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등 주변여건이 외지다는 느낌과는 전혀 동떨어지는 곳이다. 신나무골을 스쳐 지나는 국도는 이제 시속 80㎞로 달리는 왕복 4차로 도로로 연결돼 있다.

아카시아꽃으로 유명한 신동재 구길이든, 대구시 북구 칠곡에서 왜관으로 가는 새길을 택하든 차로 금방 다다르게 된다.

신나무골 성지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원래 신나무골 초기 신자인 이이전의 집이었다. 대구천주교회 첫 본당 터이자 사제관으로 들어서면 과거 선교사들의 사진과 각종 유물 그리고 성물 등을 만날 수 있다. 신나무골 신자들이 이곳을 관리한다. 사제관 왼쪽 방에 들어서면 '죽어도 성교(聖敎)를 믿겠소'라고 쓴 이선이 엘리사벳의 믿음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이선이 엘리사벳 묘역과 함께 신나무골 성지의 양대 축을 이루는 신나무골 대구천주교 첫 본당 터는 김보록 신부 사제관, 명상의 집, 마당의 김보록 신부 흉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신나무골에 있던 연화서당은 1920년 신동초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신'구학문과 교리를 가르치던 배움과 복음전파의 전당이었다.

영남 교회 선교 요람인 신나무골 성지는 이곳에서 살다가 한티로 피란갔다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소를 옮겨오면서 성지로서의 면모를 잘 갖췄다.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역에는 제대(祭臺)와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크고 작은 십자고상 소나무 곳곳 매달아

신나무골을 뒤로하고 옛 순교자들이 넘나들던 '박해'순교의 길'을 더듬어 봤다. 신나무골에서 대구쪽 방향으로 4.8㎞ 전방에 위치한 신동성당 신자묘지와 달서천을 거치면 창평저수지가 나온다. 군데군데 앉은 강태공들은 새우미끼로 붕어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곳 창평지는 어쩌다 붕어를 월척하는 운도 가끔 따른다고 했다.

계속 이어지는 건령산의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가면 지금은 불타고 없는 금낙정(琴洛亭) 터가 나타난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는 길에 군데군데 천주교 순례자들이 크고 작은 십자고상을 소나무에 매달아 놓거나 세워둔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가끔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은 임도를 따라 타고와 금락제에서 시륜제를 지낸다고 한다.

금낙정에서 발길을 옮겨 계속 오르막으로 치달으면 여부재가 나온다. 지천면 심천리와 동명면 송산리를 잇는 고개이다. 일명 여화재라고도 불린다. 북쪽의 건령산(521m)에서 남쪽의 명봉산(401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있다. 동쪽에는 저수지 송산지가, 남서쪽에는 심천지가 보인다.

여부재의 동쪽 입구로는 중앙고속도로와 국도 5호선이 지나며, 서쪽 입구로는 국도 4호선에서 갈라진 지방도가 이어져 있다. 여부재에서 북쪽 능선을 타고 1.5㎞ 정도 나아가면 건령산에 이르고, 남쪽 능선을 타고 1.5㎞ 정도 진행하면 명봉산에 다다른다.

송산저수지에서 1.6㎞를 가면 동명면 금암리에 위치한 동명성당이 나온다. 1960년 동명공소가 발족된 뒤 1979년 12월에는 본당으로 승격됐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수녀 2명이 파견됐고, 신자들이 기증한 기금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1987년 공사를 시작해 성당과 사제관'수녀원 등의 건물이 완공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명성당 바로 뒤쪽에 동명저수지가 보인다. 이 저수지를 끼고 오른쪽으로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잠깐 올라가면 성가양로원이 나온다. 일부 신자들은 이곳 성가양로원에서 79번 지방도로를 따라 송림삼거리~기성삼거리를 거쳐 한티순교성지를 순례길로 택하기도 했다. 이 경우 4, 5시간이 소요된다.

다시 동명성당에서 가산산성 방향으로 4.2㎞ 정도 가면 동명면 남원리 원당삼거리에 다다른다. 이곳 주변에 원당(남원)공소가 보인다. 한티마을의 신자들이 생계를 연명하거나 옥바라지를 위해 낮에는 사기를 구웠고, 밤에는 인근 원당마을이나 신나무골로 성사를 보러 다녔다. 밤새워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옮겨 다녔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축지법을 쓴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할 정도다.

원당공소에서 득명삼거리로 접어들면 지금의 포장도로인 부계 쪽으로 넘어가는 한티 고갯길이 나온다. 이 고갯길을 피해 오른쪽 마을길로 접어들어 1.7㎞ 정도 걸으면 교육 연수원인 평산아카데미가 나온다. 이곳에서 한티 정상 쪽으로 약 50분(1.3㎞)을 걸으면 한티순교성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난다.

◆천주교인들의 순교신심 묻어 있는 길

'박해'순교의 길' 한티 고갯길은 전국의 천주교인들로부터 순교신심이 그대로 녹아있는 길목으로 통한다. 박해를 받던 선조 교인들이 굽던 사기조각들이 지금도 널브러져 있고, 원상태 그대로 복원된 옛 공소 모습, 무명순교자의 묘역 등 순교자의 삶과 죽음이 영원으로 묶여 살아있는 순교성지다.

태백산맥의 보현산에서 서남쪽으로 팔공산, 가산, 유학산까지 이르는 팔공산괴의 장구한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진 팔공산 자락에 꼭꼭 숨어 있다.

팔공산괴의 주령인 인봉에서 칠곡 가산까지는 20㎞ 정도다. 한티는 가산과 주봉인 팔공산 사이에 위치하며 가산에서 동쪽으로 7㎞ 떨어진 깊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천혜의 은둔지로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고향땅을 등지고 떠나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뤘던 곳이다.

한티순교성지 무명순교자 묘역 입구 오른쪽 선돌들은 마치 야외 제대에 새겨진 십자가를 향해 기도하듯 서 있다. 십자가의 길 제1처에 조성된 무명 순교자의 묘는 그야말로 돌덩어리 사이에 겨우 자리 잡고 있다.

한티 순교성지에는 모두 37기의 묘가 있다. 순교자 묘의 대부분인 33기는 무명순교자의 묘지이다. 도저히 딴 곳으로 옮기기 힘들 정도가 된 순교자의 시신을 바윗돌 사이에 그대로 두고 조성한 묘역이다.

대구대교구는 선교 200주년을 기해 이곳을 순교성지로 정했다. 대표적인 순교자인 서태순 베드로의 묘지와 조가롤로 가족의 무덤도 찾아냈다. 한티고갯길에 군위로 가는 순환도로가 트이자, 길 밖에 있는 순교자 묘지를 사적지 안으로 이장하기도 했다.

현재 한티순교성지에는 항상 열려 있는 순례자의 집, 피정의 집, 영성관, 야외 제대와 십자고상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산책로 등과 잘 어우러져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새로운 신앙의 안식처로 자리 잡은 것이다.

대구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한티성지를 찾는 길은 여러 갈래다. 제일 쉬운 길은 칠곡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톨게이트 통과 후 두 개의 네거리를 직진한 후 3번째 네거리(동아백화점 앞 네거리)에서 좌회전하면 5번 구안국도에 진입하게 된다.

5번 구안국도를 따라 약 6㎞쯤 달리면 동명네거리에 도달한다. 여기서 우회전해(팔공산 순환도로) 약 5㎞ 달려 좌회전 후 약 700m 전방 왼쪽 모퉁이에 현대정유주유소를 두고 부계(제2석굴암) 방면으로 계속 올라간다.

6㎞가량 한티 고개 정상방향(청소년 야영장 방면)으로 오르면 우측에 한티순교성지 안내석이 보인다.

영천방면에서는 신령~부계~제2석굴암~한티 고개(한티 휴게소)~한티성지로 오면 되고, 대구공항에서는 파계사 방면으로, 안동방면에서는 다부 IC에서 내리면 더 가깝다.

칠곡'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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