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舌암 환자 이민영 씨

"인생의 쓴 맛은 알지만 음식 쓴 맛은 몰라요"

설암으로 투병중인 이민영 씨가 식사대용으로 주사기에 담은 영양액을 빨아먹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설암으로 투병중인 이민영 씨가 식사대용으로 주사기에 담은 영양액을 빨아먹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인생의 쓴맛은 알아도 음식맛은 못 느끼네요. 허허…."

16일 오후 경북 칠곡군의 한 아파트. 더듬거리며 어렵게 입을 연 이민영(51) 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씨의 말투는 부자연스럽고 어눌했다. 이 씨는 지난 2008년 1월 혀에도 암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씨에게 닥친 암세포는 그의 혀와 함께 인생의 미각까지 마비시켰다.

◆인생을 마비시킨 설(舌)암

이 씨의 겉모습만 보면 다른 암환자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스스로 걸음을 걸을 수 있고, 밥도 혼자서 챙겨 먹는다. 하지만 입을 열면 사정이 달라진다. 왼쪽 입 안을 보면 잇몸과 이가 아예 없다. 수술을 위해 왼쪽 잇몸뼈와 15개가 넘는 이를 몽땅 빼버린 탓이다. 자유롭게 움직여야 할 혀는 입 안 왼쪽에 단단히 붙어있다. 이 씨의 코와 입천장 사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말을 할 때마다 자꾸 쇳소리가 난다. 밥을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오른쪽에 남아 있는 어금니로 조금씩 씹어서 삼킨다. "예전에 멸치를 먹다가 잇몸에 찔려서 큰일을 당할 뻔했어요. 이제 멸치는 입에도 안 댄다니까요." 이 씨는 과거의 아픔을 웃으면서 말했다. 하루 세 끼 중 두 끼는 액체 영양제를 주사기에 넣어 목 안으로 밀어넣는다. 혀에 생긴 암세포 때문에 그는 식사를 할 때마다 전쟁을 치른다.

이 씨가 설암에 걸린 것은 2007년 겨울이었다. 입 안에 생긴 염증이 좀체 사라지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설암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는 그해 여름 설립한 도장공장을 먼저 걱정했다. 이 씨는 공장을 세우기 위해 은행에서 6천만원을 대출받았다. 큰 꿈을 품고 시작한 사업은 암세포와 함께 물거품이 됐다. 그렇게 대출금 6천만원은 고스란히 빚이 됐다.

◆사랑하는 딸의 추락

2006년 아내와 이혼을 했을 때만 해도 딸을 생각하며 잘 견뎌냈다. 이 씨가 10년간 중소기업 전자회사에 다니며 열심히 일했지만 아내는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매달려 사는 남편과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는 더 이상 한 집에서 살 수 없었다. 하지만 고통은 한꺼번에 이 씨를 덮쳤다. 자신을 돌봐주던 아내가 곁을 떠나자마자 암세포가 자리 잡았다. 2008년 1월 왼쪽 손목살과 허벅지살을 혀에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쌓인 입원비와 수술비만 2천만원이 넘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다섯 달 전에 받은 수술 때문이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병원비를 해결한 이 씨는 그래도 견뎌야 했다. 혼자 남은 딸을 위해서라도 아버지인 이 씨는 모든 것을 극복해야만 했다. 이 씨는 병원에서 폐업신고를 위한 서류를 준비했다. "건강을 되찾으면 다시 일해야지, 이 생각만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이 씨는 자기체면을 걸어서라도 미래의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9년 9월, 대구의 한 전문대 부사관학과에 다니던 딸 미선(가명'21) 씨가 기숙사 4층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 1층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큰 사고였다. 이 씨는 "만약에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면 미선이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선 씨는 이 사고로 골반뼈와 척추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시점에서 미선 씨는 학교를 그만뒀다.

부녀는 각기 다른 질병으로 인해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됐다. 미선 씨는 사고 이후 경북 구미에 있는 대기업 용역회사에서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한다. 일정한 월급이 나오는 계약직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미선 씨는 하루 9시간씩 일하고 5만원을 손에 쥐는 '일용직 노동자'다. 그것마저도 몸이 아파 매일 할 수 없는 처지다.

◆"더 이상 고통은 없었으면"

이 씨는 얼마 전 낯선 우편물을 받았다. '경매 예정 통지서'라고 적힌 우편물은 40㎡ 남짓한 그의 아파트를 경매 처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17년 전 아파트를 사기 위해 빌린 900만원이 큰 짐으로 돌아왔다. 아직 값지 못한 원금이 330여만원, 지난달 기준으로 연체 이자가 63만원이다. 400만원이 채 안 되는 돈 때문에 마지막 남은 집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각종 공과금 청구서와 빚을 독촉하는 고지서 더미를 볼 때마다 이 씨는 이 집마저 잃게 될까 봐 두려움이 앞선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의 삶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여명이 짙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집, 이 씨를 괴롭히는 암세포는 이 씨의 마음에 세상의 모든 짐을 얹어놓은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이 씨는 18일 수술을 앞두고 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