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문을 작성하는 과정은 나름대로의 시선이 전제된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나름대로의 시선을 정립하는 방법이다. 시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전제'(前提)라는 개념이다. '전제'는 말 그대로 앞에 나온 명제이다. 명제가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진술이라면 전제는 애초부터 참인 명제이다. 앞에 나오는 명제가 거짓일 때는 글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논제를 분석할 때도 전제를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논제에 제시된 전제에는 거부할 수 없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시문을 분석하여 나름대로의 시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는 전제를 무조건 긍정할 필요는 없다. 논술고사에서는 제시문에 나타난 전제를 찾아 그것을 비판하라는 문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제는 드러나 있을 때도 있지만 숨어 있을 때가 더 많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확해서 밝힐 필요가 없거나 일부러 생략하여 자신의 숨겨진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다음 문장에 대해 전제와 결론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자.
논술고사는 사교육을 조장하는 시험이므로 좋은 선발고사라 할 수 없다.
(드러난 전제) 논술고사는 사교육을 조장하는 시험이다.
(결론) 논술고사는 좋은 선발고사가 아니다.
위의 문장에 담긴 전제와 결론은 명확하다. 논술고사가 사교육을 조장하기 때문에 좋은 선발고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논술고사는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논리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겉으로 볼 때 설득력도 지닌다. 거기에는 사교육에 몸서리를 치는 많은 학부모들의 마음도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이 문장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여 자신의 시선을 정립하고 주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숨어 있는 전제를 찾아야 한다.
(숨은 전제) 사교육을 조장하는 시험은 좋은 선발고사가 아니다.
이렇게 숨은 전제를 찾으면 나름대로의 시선이 열린다. '좋은 선발고사'라는 개념에 대한 고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아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시험은 좋은 선발고사가 아니다'는 주장이 지닌 허점도 간파할 수 있다. '좋은 선발고사'는 사교육의 문제와는 관계없이 시험 자체가 지닌 교육적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도 있고, 나아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시험'에 논술고사 외에 수학능력시험과 학교내신시험 등이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진술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논술고사가 좋은 선발고사가 아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숨은 전제에서 파악된 문제점에 대한 보완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처럼 특정한 주장을 드러내는 글에서 숨은 전제를 발견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숨은 전제를 찾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 숨은 전제를 의도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비판적인 사고가 지닌 의미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논술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명분 속에 담긴 다른 의미들, 예를 들어 '논술고사는 사실 사교육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교육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학능력시험에서 도움을 받던 기득권들이 사교육이란 명분을 활용해서 사교육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논술고사를 공격했다'는 주장은 너무 앞으로 나아간 사례이다. 일정 부분 진실이라 할지라도 감정적이고 악의적인 주장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논술고사가 지닌 주장은 신문에 나오는 기사문이나 사설과는 분명 성격이 다르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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