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하우스 푸어

우리나라 베이비 붐 세대(1955년에서 64년 사이에 태어난 약 900만 명)의 경우, 절대적인 자산 1호는 '내 집'이었다. 아무리 자가용을 몰고 다니고 호화 생활을 해도 자기 집이 없으면 가장(家長)으로서 낙제점이었다. 그래서 결혼하면 일단은 셋방살이부터 시작을 하고 돈이 좀 모이면 전세로 옮기고, 그렇게 재산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은행 융자에 힘입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것이 재산 증식의 가장 표본이었다.

내 집이 있다는 것은 곧 생활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집세 부담이 없으니 지출도 크게 줄어들었고 게다가 해마다 집값이 쏠쏠하게 올라갔으니 이래저래 삶의 재미를 느꼈다. '집 마련할 때까지는 딴 곳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교훈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내 집이 있다는 것은 곧 중산층 대열에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집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그 집 때문에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 가구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주택 보유 1천71만 가구 중 10.1%가 '하우스 푸어'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하우스 푸어'는 한 집을 가진 사람으로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는데 원리금 상환 때문에 생계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즉 '하우스 푸어'의 경우 평균 2억 3천만 원짜리 집을 갖고 있는데 대출 잔액은 8천3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이럴 경우 '하우스 푸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의 41%는 고스란히 집 대출 갚는 데 들어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이다. 특히 '하우스 푸어' 중 8.4%는 아예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집 가진 것이 오히려 죄가 된 셈이다.

과거에는 가난의 대명사가 홈리스(homeless)였는데 이제는 번듯한 집을 갖고도 가난에 찌들어야 하는 신종 가난층이 생겨나고 있다. '집 가진 죄'가 바로 빈곤층으로 하락하는 지름길이 됐으니 중산층이 무슨 희망으로 미래를 설계하겠는가.

인간생활에 가장 기초가 돼야 할 '집'이 '애물단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막힌 현실이다. 이런 사회 구조로 어떻게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어 갈 것인지 정치권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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