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딱하네요. 추천된 학생 모두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24일 오후 대구 중구 계산동 매일신문사 2층. 책상 위 수북하게 쌓인 장학생 추천서를 바라보는 이성화 에스엘서봉장학재단 과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신문사가 주최하는 '제2회 청소년축제한마당 장학생' 선발심사가 이날 열렸다. 장학금 추천에는 대구경북 초중고에서 384건의 추천서가 올라왔다. 매일신문사 등은 학생 30명을 선발, 100만원씩 장학금을 줄 예정이다. 장학생을 뽑는 기준은 성적순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장학생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자녀를 필수 지원조건으로 단 것도 이 때문.
추천자들은 가슴을 울리는 사연이 많았다. 이혼과 질병으로 한쪽 부모를 잃은 경우가 다반사였고, 혼자 살거나 조부모의 그늘 아래 사는 아이들도 상당수다.
심사에 참여한 김현국 경상북도교육청 장학사는 "부모를 잃고 큰고모, 작은고모집을 옮겨다니는 한 초등학생이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화 살 돈이 없어 남이 버린 신발을 주워 신었다고 하더라"며 "어린 나이에 가난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아이들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학생 추천자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탓에 심사위원들은 자신만의 기준을 정했다. 이희갑 대구시교육청 장학관은 성적과 리더십 등 세상이 우대하는 기준과 관계없이 불행이 겹겹이 쌓인 학생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 장학관은 "똑같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이들 중에서도 백혈병이나 지체장애처럼 자신이 질병과 장애를 갖고 아이들에게 우선권을 줬다. 더 뽑고 싶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학생이 4명뿐이라 아쉬울 따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바닥에서 희망을 싹틔우는 학생에게 기회를 준 심사위원도 있다. 정동희 매일신문사 문화사업국장은 엄마가 유방암으로 죽고 아버지가 돈을 벌러 먼 곳으로 가 7살 난 남동생을 혼자 보살피는 '학생 엄마' 여고생 이야기를 읽고선 눈시울을 붉혔다. 정 국장은 "남동생에게 엄마 역할을 하면서 학급 반장까지 하는 여고생의 당당함에 박수를 치고 싶다"며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고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이 이런 친구들을 보고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장학생 선발은 각 학교 학급의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진행되며 해당 학생에게 추천 사실을 비밀로 하게 돼 있다. 장학생에 추천됐다가 탈락됐을 때 학생이 받을 상처를 막기 위해서다. 또 '가난한 학생'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기 위해 장학금 전달식을 따로 하지 않는다. 선발된 학생의 개별 통장으로 장학금을 입금해 조용히 용기만 북돋워주겠다는 취지인 것. 가난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몫이라는 점을 공감한 8개 기업이 장학금 3천만원을 후원했다.
한편 이날 심사위원 4명은 심사비 60만원을 모아 매일신문사 '이웃사랑' 코너에 기부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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