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을 알자] 심근경색·부정맥 돌연사 (1)

때·장소 불문 '심장스톱'…年 2만명 넘게 손 못쓴채 당해

'40대 남성, 마라톤 참가했다가 갑작스레 쓰러져 사망!' '50대 남성, 산악자전거 타던 중 쓰러진 뒤 숨져!' '50대 남성, 골프장 주차장 내 자신의 차에서 아무런 외상없이 숨진 채 발견!' 하루가 멀다 하고 짧게나마 신문, 방송에 실리는 사망 소식들. 대개 이런 소식에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라는 설명이 뒤따르고, '돌연사'라는 표현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돌연사는 증상이 갑자기 발생해 1시간 이내 숨지는 것을 뜻한다. TV를 보다가, 운동을 하거나 운전 중에, 때로는 잠자던 중 숨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심장정지로 돌연사하는 사람은 한 해 2만1천여 명. 폐암, 자살, 교통사고보다 많다고 한다. 앞으로 2차례에 걸쳐 돌연사의 위험과 현실, 돌연사를 막을 수 있는 응급처치법 등을 알아본다.

◆한 해에 2만1천여 명 돌연사

원인을 알기 어려운 돌연사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심장근육에 피를 보내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심근경색이나 맥박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부정맥이 주된 원인이다. 돌연사의 90%가량은 여기에 해당한다. 심장근육은 쉼없이 뛰어서 온몸으로 피를 보내야 하는데, 심장근육이 활발히 뛸 수 있도록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급성 심근경색'이 심장을 멈추게 한다.

부정맥은 정상맥박인 분당 60~100회보다 적거나 많은 경우 모두를 말한다. 갑자기 놀랐을 때처럼 두근거리거나 맥빠짐, 어지러움, 실신, 가슴통증,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인다. 부정맥이 심하게 나타나 심장이 제대로 혈액을 내보내지 못하거나 심장이 멈추면 돌연사로 이를 수 있다. 유전적 원인도 있지만 지나친 스트레스, 술, 담배, 카페인, 불충분한 수면 등도 원인이 된다. 대개 증세가 사라지면 심전도를 찍어도 멀쩡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정맥이 있을 때 바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급성 심근경색이나 부정맥 등으로 갑작스레 숨지는 돌연사는 한 해 2만1천여 명. 폐암이나 자살의 2배이고, 교통사고 사망자의 4배에 이르는 수치다. 인구 1천 명당 1, 2명꼴로 돌연사를 맞게 된다. 매우 높은 수치다.

대구에서도 돌연사 증상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람이 한 해 1천 명을 넘어섰다. 2007년 846명이던 것이 2008년 924명이 됐고, 2009년엔 1천7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급성심정지(심실세동 포함) 환자는 747명에 이른다. 이런 환자의 70%는 가정에서 발생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사무실, 학교, 도로, 공장 등에서 발생하며, 남자가 여자보다 4배나 많다.

◆4분의 벽

심장은 온몸으로 혈액을 내뿜는 우리 몸의 펌프다. 심장마비는 이런 펌프 기능이 중단된 상태를 말한다.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온몸으로의 혈액 순환이 중단되기 때문에,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뇌손상을 입는다.

뇌는 혈액 공급이 4, 5분만 중단돼도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 심폐소생술은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때 인공적으로 혈액을 순환시키고 호흡을 돕는 응급치료. 심방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혈액을 강제로 순환시켜서 뇌 손상을 최대한 늦추고 심장이 마비 상태로부터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심장마비를 목격한 사람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심장마비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장마비로부터 살아나는 사람 중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심폐소생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 비록 생존하더라도 대다수가 심한 뇌손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된 지 4분이 넘어서면 신경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류현욱 교수는 "현재 응급 시스템상 119구급대가 도착해서 첫 응급처치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4분 이내는 거의 불가능하고, 대개 10분 정도 걸린다"며 "결국 심정지 환자를 보는 즉시 누군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심장정지 이후 생존 가능성은 1분마다 7~10%씩 떨어진다. 바꿔 말하면 10분 정도가 넘어서면 숨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목격자가 환자를 발견하는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생존 가능성이 떨어지는 속도는 분당 3, 4%로 바뀐다. 다시 말해서 20분가량이 지나도 환자의 생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심폐소생술 비율 극히 낮아

문제는 갑작스런 심정지 환자가 발생해도 심폐소생술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 미국 시애틀의 경우 심정지 후 생존율이 40~45%에 이를 정도다. 북미 전체 평균도 15%에 육박하고, 일본이나 싱가포르는 7%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병원 밖에서 갑자기 심장마비가 발생한 경우 환자가 살아서 병원에서 퇴원하는 비율이 2.4%에 불과하다. 이런 생존율을 조사하는 국가 중에서는 최저선에 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심정지 환자가 되살아나려면 '생존 사슬'이 쉼없이 이어져야 한다. 연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5개의 응급처치'를 일명 '생존 사슬'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사슬은 신속한 심정지 확인과 신고 단계. 환자를 발견한 목격자가 신속하게 심정지를 인지하고, 환자가 발생했음을 119에 신고하는 것이다. 두 번째 사슬은 심폐소생술을 목격자가 환자에게 신속하게 실시하는 것이고, 세 번째 사슬은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현장 주변이나 119구급차에 있는 심장충격기(자동제세동기)를 이용해 현장에서 심장이 되살아나도록 충격을 주는 것이다. 네 번째 사슬과 다섯 번째 사슬은 심정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뒤에 의료진에 의해 효과적인 전문 소생술이 시행되고 심정지 환자의 심장박동이 회복된 뒤에 저체온 치료, 관상동맥중재술 등의 통합적인 중환자 치료를 하는 것이다. 전체 5가지 사슬 중에서 3가지 사슬은 심정지가 발생한 현장에서 목격자가 해야 하는 것. 심정지 환자의 생존은 목격자에 의해 좌우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제공=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류현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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