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지났다. 한때 우리는 지나친 전쟁공포에 떨었지만, 이제는 전쟁을 잊은 것 같다. 정치가들과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전쟁의 공포를 키우기도 했고, 전쟁의 기억 따위는 잊으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긴 한국전쟁이 있었고, 아직도 많은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가슴 속에는 깊은 상흔은 남아 있다. 더불어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과 잊은 사람들에게 전쟁은 위험으로 상존한다.
이 책 '6'25를 아니, 애들아?'는 요즘 사회분위기로는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책이다. 해마다 5월이면 가족과 가정에 대한 책, 5월과 6월이면 민주화와 관련한 책, 유명한 정치인의 기일 혹은 몇 주년이면 그들에 관한 책이 쏟아지지만 6'25와 관련한 책은 60주년이던 지난해 반짝 출간됐을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성인과 학자를 위한 내용이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6'25의 참상과 그 언저리 역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물론 성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그때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한국전쟁을 경험한 70대 이상 할아버지와 할머니 7명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와 인터뷰 형식을 동원해 풀어내고 있다. 경상북도 봉화가 고향인 전우겸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의 6'25는 지옥도나 다름없다.
"빨치산은 애써 만들어 놓은 떡과 음식물을 모두 빼앗아가고 뭇매를 때리고 사람을 해쳤다. 밤새 비명소리가 이웃집, 아랫마을, 윗마을 할 것 없이 먼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밤에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모두 긴장했다."
강릉시 교동에 사는 최인숙 할머니는 수백 리 피란길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당시 9세이던 할머니는 추위와 눈보라 속에 경주까지 걸어서 갔고, 대구와 부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갔다.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이 고향인 소영순 할머니는 좌우익의 대립이 한창이던 시절 반란군들과 지방 빨갱이들에게 친척을 잃었다. 피범벅이 되어 죽은 외숙모를 두고도 외삼촌들은 장례도 못 치르고 도망쳐야 했다.
서울이 고향인 김정순 할머니는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점령하면서 애꿎은 피란살이와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인민군의 총부리에 떠밀려 부역했는데, 국군이 점령하면서 부역자 색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강원도 속초에는 실향민 집성촌 '아바이 마을'이 있다. 김남선 할머니는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으로 '아바이' 마을에서 피란 생활을 하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갈 수 없었다. 속초시 청호동의 '아바이' 마을은 함경도 출신의 피란민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어르신' 혹은 '할아버지'를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 '아바이'라고 이름 지었다.
한국전쟁 당시 요인 암살과 정보 수집, 침투임무를 수행했던 특수부대 출신 할아버지는 지금도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 눈에 선하다. 자신이 수행했던 임무 때문인지 북한에 사는 가족들이 숙청당했고, 그 때문에 늘 가슴이 아프다. 이 할아버지는 북쪽 고향이 가까운 강원도 속초에 살고 있다.
책은 각각의 인물들이 전하는 전쟁의 참상을 인터뷰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하는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38선이 그어진 배경과 의미,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 사건, 남로당의 기원과 강령, 북파공작원 등 한국전쟁과 관련 있는 사건이나 역사를 키워드 별로 소개한다. 또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 이산가족 상봉까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통과해야 했던 1950년대 전후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다.
지은이는 "우리가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살 수는 없다. 그러나 6'25전쟁이 가져다 준 교훈은 알고 있어야 한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하게 사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라고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해. 모든 상처와 기억을 땅에 묻고 잊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러나) 우리 세대는 어려워. 서로에게 한 짓을 잊을 수가 없으니까."
인터뷰에 응했던 한 할아버지의 말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준다. 141쪽, 9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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