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의자'(2011)는 "나는 큰스님이 아니라, 그냥 법정 스님이다"라는 평소 말씀처럼, 그리 거창한 의자가 아니라 그냥 조그마한 의자 이야기다. "평생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며 무소유로 살다가 무소유로 입적한 법정 스님의 일화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묻는 종교 다큐멘터리"라는 소문에 지레 기죽거나, 기필코 눈물 쏟고야 말겠다고 각오를 다질 일도 없다.
준엄한 법정에 놓인 피고인 의자 위로 떨어지는 쩌렁쩌렁 장군죽비가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랑 아옹다옹하다가 손들고 벌서던 복도에 비치던 봄 햇살 같은 풍경이다. 멀쩡한 책상에다 칼로 금을 그어 티격태격 심술부리다가, 혹은 짝꿍에게 억지 욕심내다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던 그날처럼 말이다.
넘치는 물질은 결코 맑고 향기로울 수 없다고. 욕심에서 비롯된 녹은 쇠그릇에서 나와서 마침내 쇠그릇을 삼킨다고 하신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는 애당초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팔다리로 행하기가 아득할 뿐이다.
"책상 위에 물건이 쌓일 때마다 버린다.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면 방 밖으로 나간다." 누누이 일러주시는 스님, 스스로에게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셨나 보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난초 화분에서 한 소식을 들으셨단다. 산문을 나서서야 뙤약볕 아래에 두고 온 난초가 생각이 나, 자꾸만 바빠지는 스스로의 마음이 보이더라고. 어디엔가 마음을 빼앗긴 자의 속박감과 스스로 마음을 비운 이의 자유로움의 차이를 말이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성자도 될 수 있다." 떠나는 날까지 세상에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노라는 다짐에서. 못내 뿌리칠 수 없었던 세상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으로 가슴 졸이던 모습에서. 입안으로 들이는 밥알 한 톨에도 매번 전전긍긍하던 노스님의 곰살궂은 장면마다 무소유의 치열함과 자유로움을 함께 되새겨 본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미리 쓰는 유언' 중에서)
끝내 빼앗으려는 혹은 빼앗기지 않으려는 조바심도, 못내 가지지 못한 혹은 채워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분노도 잦아든 마음에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이 깃든다고 일러주신 노스님. 지금쯤 어린 왕자와 작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사이좋게 지내시고 계실까.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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