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모든 것의 가격'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인 에두아르도 포터가 쓴 'price of everything'이라는 책이 얼마 전 '모든 것의 가격'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포터는 인간의 모든 선택과 결정의 배후에는 '가격'이라는 절대적인 잣대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와 결정의 유일한 기준이 그 행위와 판단으로 발생하는 '가격'의 차이에 있다는 그의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조할 수는 없었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할 근거 역시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포터가 만난 한 멕시코 출신 불법 체류자는 고향에 있는 자녀들을 데려오기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위조 서류를 만들어 검문소를 통과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수단이지만 5천 달러라는 거액이 필요했다. 그가 자녀들을 데려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결국 도보로 사막을 횡단하여 국경을 넘는 1천500달러짜리 방법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며칠 동안 사막을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 그것도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을 피해 가장 험난한 루트로 이동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에게 있어 자녀들의 목숨 값은 5천 달러에서 1천500달러를 뺀 액수, 즉 3천500달러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욕할 수 없다. 그의 시간당 임금은 8달러였으니까.

1980년대 중반과 후반 로버트 레인이라는 학자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두 번에 걸친 사회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집단이 있는데, 그 집단은 저소득층 집단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당장 삶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경제적 조건이 충족된다면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가치, 인간을 규정하는 본질적 가치는 물질적 단위로는 판단될 수도 없고, 판단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지금껏 우리가 믿어왔던 상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은 포터가 지적한 대로 우리가 좋건 싫건 상관없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요즘 복지 전쟁의 화두가 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문제의 경우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의 주범으로 80%가 넘는 대학 진학률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높은 대학 진학률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의해 발생한 문제이므로 공적 부문의 책임성 문제가 아닌 사적 영역에서의(대학 당국, 학부모, 학생 차원에서의) 자발적 해결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분명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정 사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선택이 자발적 선택이 아닌 강요된 선택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학 졸업장 없이는 정규직 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구조에서 대학 입학은 개인에게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졸업장 없이 어찌어찌 운이 좋아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동일한 업무에 종사하는 대학 졸업자에 비해 저렴한 가격의 인간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미국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넘어가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의 초입에는 다리를 건너는 자동차들로부터 7달러 50센트의 통행료를 받는 부스들이 있다. 이 부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장이 없는 중산층이다. 이들을 중산층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은 부스에 앉아 통행료를 수거하는 대가로 받는 급여가 뉴욕의 명문 사학 전임교수들의 급여와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유명 카피라이터의 급여가 화장실 변기를 고치는 비정규 기술자가 받는 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세상이 21세기 대한민국이다. 한 줄의 광고 카피 문구의 가치가 우리의 기본적인 삶에 반드시 필요한 화장실 설비의 수십 배가 넘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가치를 가격으로 매기는 것도 모자라서, 이러한 가격이 누구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근거로 매겨지는지에 대해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최근 들어 반값 등록금 문제의 해결에 여야를 막론하고 그 당위성과 시급함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점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만 높은 가격의 인간으로 매겨지는 구조적 모순과 불공정을 시정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과 해결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 한 반값 등록금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중 세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작은 문제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신효진<경일대 교수 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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