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다. 나는 얼른 휴대전화 뚜껑을 연다. 십만원이 통장에 들어왔다는 글자가 화면에 뜬다.
얼마 전에 지갑을 정리하다가 계산서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12월의 날짜가 적혀있는 계산서였다. 그날은 며느리가 신행오기 전날이었다.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전통시장에 갔었다. 며느리에게 시댁에서의 첫 밥상을 멋지게 차려주고 싶은 시어머니의 마음은 설레고 바빴다. 내가 시댁에서 첫 상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면 시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시부모님이 베풀어 주신 깊은 사랑을 나도 며느리에게 어설프게나마 흉내내어 보리라 마음먹고 시장을 찾은 것이었다.
어느 해물가게에 들렀다. 주인아주머니는 해삼이며, 전복이며, 가지가지를 가득 담은 봉지와 함께 계산서도 같이 내밀었다. 나는 그날 바쁘기도 했지만 평소에도 무엇이든 꼼꼼히 챙기고 계산하는 야무진 성격이 아닌지라 계산서에 적힌 대로 현금을 지불했었다.
그리고 대여섯 달이나 지났을까. 우연히 그 계산서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쩔 것인가. 실제 산 물건 값보다 십 만원이 더 보태어진 채로 적혀 있었다. 해물가게 아주머니의 실수였다. 계산서를 확인하지 않고 현금을 선뜻 지불한 내 실수가 더 큰지도 모른다.
나는 며칠을 고민했다. 그냥 덮어두자니 돈이 아깝고, 들고 가자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닌 반 년이나 지난 지금, 그것도 영수증도 아닌 계산서를 들고 가서 따진들 주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뿐 아닌가. 계산서는 계산서로서의 효력만 있을 것 같았다. 영수증이라면 모를까. 카드 계산을 꺼리는 주인 탓에 현금으로 지불했던 걸 후회하기엔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그러기를 몇 날, 밑져봐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가게에 들렀다. 하지만 성공하리란 기대는 거의 없었다. 계산서를 들여다 본 아주머니는 한마디의 변명도 없었다. 오히려 미안하다며 지금은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여유 될 때 보내겠노라 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남을 믿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돈을 보내주지 않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의 반듯한 양심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돈을 보내온 것이다. 형편이 아직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올곧은 심성으로는 도저히 미룰 수 없었으리라. 불신만이 가득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손가락이 떨린다. 나는 더듬더듬 핸드폰의 문자를 누른다. 아주머니께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세상은 아직 살맛나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백금태<수필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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