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백만 번 산 고양이

백만 년 동안 산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의 고양이로 살아봤고 뱃사람의 고양이로, 서커스단의 고양이로 살아봤습니다. 또한 혼자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로, 어느 소녀의 고양이로도 살아봤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어느 누구의 고양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백만 번째 다시 태어난 고양이는 주인 없는 길고양이가 되었습니다. 멋진 이 고양이 주위에 암고양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모두들 선물을 주며 구애를 했지만 고양이는 시큰둥했지요. "난 백만 번이나 죽어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고양이는 자신만을 사랑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양이를 본 척도 않는 하얀 고양이가 나타났습니다. 고양이가 다가가 "난 백만 번이나 죽어봤다고"라며 갖은 자랑을 늘어놔도 하얀 고양이는 "그러니?"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에게 반했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둘은 늘 함께 다녔고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더 이상 "나는 백만 번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밖에 모르던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하얀 고양이는 먼저 숨을 거둡니다. 99만9천999번을 죽으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고양이는 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며칠 밤낮 백만 번을 울다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춥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백만 번 산 고양이'(사노 요코 지음'비룡소 펴냄)라는 제목의 그림책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누려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호사스럽고 풍요로운 삶을 살더라도 타인에게 예속된 삶은 별 의미가 없었나 봅니다. 삶의 의미를 깨달으려고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이 세상으로 되돌아옵니다.

장년기와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여성들 중 많은 이들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하면서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대입시켜서라도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억울함을 달래보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자기 계발서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주도적(self-initiated)으로 살아라.' 그런데 자기 주도적으로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에게는 특히 힘든 일이지요. 남의 입장과 감정을 먼저 헤아리다 보니 자기 입장과 감정을 돌볼 겨를이 없고, 타인에 비쳐지는 자신의 이미지가 중요해서 "NO"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못합니다. 무언가 결정하고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도 가족이나 친구 등 다른 사람의 뜻에 기댑니다.

자기 주도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자아 존중감(self-esteem)이 낮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강의와 상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히스토리를 듣게 되는데 어떤 사연을 안고 있건 간에 적지 않은 이들에게서 낮은 자아 존중감을 발견합니다. 자아 존중감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데 밑거름이 되므로 심리상담사들은 어떤 유형의 내담자를 만나든 자아 존중감 향상을 상담의 주요 목표로 설정합니다.

몇 달 전 문학치료를 공부하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연구회를 결성했습니다.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의 미혼'기혼 여성들이 책을 매개로 하는 '마음 나눔'을 펼치고 있는데 모두들 무척 열성적입니다. 가끔은 우리 스스로 먼저 행복해지기 위한 이벤트도 벌입니다. 그 일환으로 연구회 회원들의 명함을 만들고 있습니다.

직업이 있거나 그럴싸한 직책이 있어야만 명함을 갖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대한민국 주부 누구라도 명함을 만들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네 여성들은 결혼하면 이름을 잃어버리고 누구네 집 며느리, 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립니다. 어쩌다 기분이 좋은 남편이 아내의 이름을 서비스처럼 가끔 불러주는 것이 고작이지요.

명함을 만들자는 저의 제안에 회원들은 반색을 합니다. 2만원이면 귀한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고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자기 인생에 책임지는 삶을 꾸려 가는 것이야말로 자기 주도적인 삶이 아닐까요? 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대표적 어록인 '임제록'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 주인공이 되면 그가 서 있는 곳이 다 진실한 것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

고양이는 비록 길고양이로 태어났지만 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살면서 사랑의 의미도 깨닫습니다. 고양이가 다시 태어나지 않기로 한 것은 자기 주도적 삶을 완성했기 때문이겠지요. 모두들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김은아(영남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마음문학치료연구소장 happymind100@korea.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