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론, 위기론, 붕괴론. 지역 한나라당 주변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다. 지난 3월 말 동남권 신공항 무산 이후 그동안 쌓여온 불만이 폭발하면서 '내년에 두고 보자'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물갈이론'은 말 그대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냥 바꾸자는 게 아니라 싹 바꾸자는 것이다. 지역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삼지 않고, 오랜 한나라당 일변도의 정치 지형과 전국 최고의 '친박근혜' 정서에만 기대어 '웰빙'하고 있는 많은 수의 대구경북 지역구 국회의원들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다. 대구 12개와 경북 15개 지역구 가운데 몇 사람이나 살아남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이번 총선은 연말 대선과 패키지다. 총선에서 지면 대선에서도 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래서 여야 모두 제1당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170석 규모의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의 의석 감소는 불가피하다. 120석 이하 전망도 있다. 의석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폭을 줄이려면 공천을 잘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한나라당발 물갈이론은 그래서 나온다. 벌써 '누구누구'라는 불출마설 내지 탈락설이 나돈다.
'위기론' 역시 '물갈이론'의 다른 말이다. 한나라당의 위기이자 국회의원들 개개인의 위기다.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유력시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치마폭'을 보호막으로 삼으려는 인사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많다. 매일신문 정치아카데미 강사로 나선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한나라당의 위기가 저축은행 사태가 벌어진 부산에서부터 오고 있으며 대구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1996년 15대 총선 당시의 자민련 바람 같은 광풍의 리바이벌 가능성도 이야기했다. 당시 13개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는 단 두 명만이 살아남았다.
'붕괴론' 역시 대구경북의 한나라당 아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2000년의 16대 총선과 2004년의 17대 총선은 한나라당의 싹쓸이였다. 사실 한나라당 집권 직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도 싹쓸이였다. 공천파동에 이은 친박바람으로 무소속 당선자가 속출했지만 이들은 선거 이후 한나라당에 '복귀'했다. 그래서 지금 대구경북 27개 지역구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은 26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나라당 싹쓸이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전망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도 매일신문 정치아카데미 개강식 특강에서 "부산의 18개 지역구 가운데 안심할 수 있는 곳은 단 2곳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고 박사는 대구경북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대 어느 선거보다 신인들이 경쟁하기 좋은 구도"라는 언급에서 미뤄보면 지금 시점에서는 재당선을 장담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고 박사는 한나라당의 내년 총선 공천 교체율이 최소한 40%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구경북지역의 과거 몇 차례 총선의 공천 교체율을 돌이켜보면 크게 높은 수치는 아니다. 한나라당이 성공작이라고 평가하는 17대 총선 공천에서 대구에서는 11명 가운데 6명의 신인이 등장한다. 공천 교체율이 50%를 넘었다. 경북에서도 교체율이 3분의 1을 넘겼다. 직전 총선인 2008년의 18대 총선에서도 당락을 떠나 대구와 경북에서 한나라당의 공천 교체율이 모두 40%를 넘겼다. 역대 총선의 교체율과 시중의 물갈이 욕구를 감안할 때 한나라당의 대구경북지역 공천 교체율이 40%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은 쉽게 할 수 있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살아남기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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