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색 천 짜기

아이들이 천을 짜고 있다. 좁고 길게 잘려진 갖가지 색지들이 날실이 되고 씨실이 되어 만난다. 손놀림이 재바른 친구도, 서툰 친구도, 몸이 불편한 친구도 하나가 되어 천을 엮는다. 아이들의 손길에 한 단 한 단의 천이 짜인다. 다투고 질시하고 고자질하던 마음이 배려로 가득 찬다. 아이들은 친구의 다리가 되어 주었던 나날을 떠올리며 천을 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아이가 목발을 짚고 학교에 왔다.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등하교도, 수업 준비도, 화장실도, 점심식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도 아니어서 직장에 다니는 부모님이 일을 쉬고 올 수도 없었다. 반 친구들은 의견을 모았다. 하루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아이를 돕기로 했다. 당번이 정해진 것이었다.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시작했다.

당번은 등교 때부터 아이의 가방을 챙긴다. 양손에 들고 오는 아이, 머리에 이고 오는 아이, 가슴에 안고 오는 아이, 모습도 제각각이다. 자신의 가방 무게만도 버거울 텐데 한 개 더 보탰으니 힘든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괜히 어깨가 펴지고 뿌듯한 표정이다. 친구를 돕는다는 것이 자랑스러운가 보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더 바빠진다. 아이를 데리고 남보다 먼저 식당으로 간다. 식판을 받아 아이 앞에 놓아 준 후에야 자기의 식판을 챙긴다. 남은 잔반까지 처리한 후 교실로 온다. 가방을 챙겨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학원 차에 아이를 태워줄 때까지가 그날의 할 일이다.

귀찮을 수도 있으련만 당번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친구를 괴롭히는 것이 취미인 개구쟁이마저도 그날만은 친구의 손발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일은 내가 당번이야." 아이들은 오히려 그날을 기다린다. 때 묻지 않은 아홉 살 아이들의 순수함이 짙푸른 녹음처럼 싱그럽다.

아이들은 어떤 대가도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계산기부터 두드리며 손익을 따지는 어른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이들은 봉사를 머리로 하지 않고 가슴으로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떤가. 가슴보다 머리가 앞서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막바지 손놀림이 분주하다. 어느새 넓적한 색 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알록달록한 천 위에 아이들의 따스한 사랑이 묻어난다. 날실과 씨실이 어우러져 천이 짜이듯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기꺼이 봉사할 줄 아는 '함께 사는 우리'가 거기에 있다. 아이들은 친구를 도우면서, 친구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의 의미를 깨달아 가고 있으리라. 오늘도 아이들은 천을 짜듯 서로가 날실 씨실이 되어 하루를 보낸다.

백 금 태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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