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어느 마을, 과년한 딸을 둔 집에 두 군데서 혼담이 들어왔다. 동쪽 마을에 사는 총각은 집안은 부자인데 얼굴이 못생겼고 서쪽 마을에 사는 총각은 잘생기긴 했으나 살림이 가난했다. 부모가 딸에게 말했다. "네가 동쪽 마을로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손을 들고 서쪽 마을로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쪽 손을 들어라." 그 말을 들은 딸이 두 손을 다 들었다. 부모가 왜 두 쪽 손을 다 드느냐고 묻자 철없는 딸이 대답했다. "밥은 동쪽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에 가서 자면 안 되나요?"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잔다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유래라고 한다. 물론 오갈 데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를 뜻하는 말로 더 잘 쓰이는 말이지만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을 풍자한 말로 보면 되겠다.
'경제의 달인(達人)'으로 믿고 뽑은 MB 정권 후반기, 심상찮은 물가 상승(4% 내외)을 보며 동가식서가숙의 욕심을 생각해 보게 된다. 케인즈, 아담 스미스, 프리드먼, 제프리 삭스 등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의 고매한 이론 같은 건 제쳐 두고 무식하고 간단하게 짚어보자. 물가는 왜 내려도 될 여지가 생겨도 요지부동, 한 번 오르고 나면 내려올 줄 모를까. 그나마 양심이 있는 동종업자가 값을 내리려 들면 담합이란 걸 해서 짜고 올리는 못된 짓은 왜 되풀이될까. 온갖 경제논리, 시장논리 핑계를 대겠지만 시장터 밑바닥에 '나 홀로 욕심'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자그만 동네를 놓고 보자. 양복점 주인이 이웃 구둣방 주인에게 구두를 주문하러 갔다고 치자. 주문받은 양복이 팔리는 대로 돈 벌어서 구두값을 줄 거라고 약속한다. 구둣방 주인은 양복점 사장으로부터 구두값을 받을 거라는 기대 속에 이웃 가구점 주인을 찾아가 평소 사고 싶었던 식탁을 주문한다. 가구점 주인은 식탁을 팔면 곧 수입이 들어오겠거니 하고 이웃 시계방에 고장 난 시계를 새 시계로 바꾸러 가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양복점 주인이 구둣방으로 전화를 건다. 손님이 주문을 취소해서 구두를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자 구둣방 주인은 곧장 가구점에 식탁은 다음에 사겠다고 전화를 걸고 가구점 사장은 시계방에 새 시계는 나중에 바꾸겠다고 말해 버린다.
여기까지는 일단 돈이 서로 돌아야 경제가 돈다는 평범한 비유다. 만약 양복점 주인이 구둣방에 찾아가 주문을 했을 때 구둣방 주인이 10만 원 하던 구두를 13만 원으로 올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당장 양복점 주인은 70만 원에 해주던 양복값을 80만 원쯤 올릴 것이고 가구점은 뒤따라 10만 원을 올리고 시계방은 시계값을 올릴 것이다. 혼자 밑지기 싫은 심리다. 원래 장사란 게 그런 거다. 욕심이라고 말하면 조금은 억울할 수도 있는 시장바닥의 이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욕심을 서로 고집할 때 누가 손해를 보느냐는 거다. 남의 물건, 다른 식당 음식값은 다 깎거나 내려놓고 내 물건, 우리식당 음식값만 비싸게 받아도 잘 돌아가는 세상은 없다. 내가 값을 올려 조금 더 번 이익도 다음번 내가 필요한 걸 살 때는 저쪽이 올린 값에 바쳐야 한다. 산유국의 원유가 하락과 관계없이 한번 오르면 내려가 본 적이 없는 기름값, 구제역 사태 후 소값이 내렸음에도 꼼짝 않고 있는 쇠고기값이나 식당의 육류 가격도 얼핏 많이 벌 것 같지만 딴 업종이 올리면 피장파장이다. 제 보리 주고 제 떡 사먹는 꼴이 된다.
요즘 물가를 보면 여기저기서 몇%씩 뛰어오르는 것만 보일 뿐 사방을 둘러봐도 스스로 내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만 값 내리기가 왠지 떨떠름하다는 심리를 인정한다 해도 그런 이기적 수요공급 구조를 유지하면서 '돈이 안 돈다'거나 '경기가 없다'는 불만만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올릴 것도 내릴 것도 없어 무작정 오르는 물가고에 고스란히 당하는 서민들과 월급쟁이 소비 계층의 고통을 생각해 보라. 내가 가진 물건값, 음식값은 안 내리고 남의 것은 내려가기를 바라는 건 동가식서가숙의 욕심이다.
정치든 경제든 내 것부터 먼저 버리고 내려서 남의 것도 내려가게 만들고 그래서 나도 쉽고 싸게 남의 것을 얻고 살 수 있는 상생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못난 딸처럼 두 손 다 든다고 동쪽 서쪽 총각 다 차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승리의 희망 속에서도 아직 이 나라엔 수십만 쪽방 서민들이 물가고 속에 굶주리고 있다. 고물가(高物價)는 계층 분열과 민심 이반을 부른다. 우리 모두 동가식서가숙의 욕심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
김정길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