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양화하는 삿세 교수♥전위무용가 홍신자씨 부부 러브 스토리

"몇 번 만나고 내 짝이야!" 70대 가시버시 '알콩달콩'

평생에 걸쳐 한국을 사랑한 이방인, 웨르너 삿세(70) 한양대 석좌교수. 그는 평생 짝사랑한 한국으로부터 신부 '홍신자'(71)라는 선물을 받았다.

두 사람은 지난주 달성 가창 동제미술전시관에서 열리는 웨르너 삿세 전시를 위해 대구에 머물렀다. 장마 끝에 비가 흠뻑 내린 가창의 공기는 풋풋했다.

현대무용가 홍신자 씨는 평소 그에게 집중되는 언론의 관심을 조심스레 남편 삿세 교수에게 돌렸다. "제 얘기는 빼도 돼요. 이 사람 전시가 목적이잖아요." 20여 년 동양화 작업을 하고 있는 삿세 교수는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 전주, 대전, 강릉 등지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일상적인 이야기와 몸짓에서도 깨알 같은 신혼부부의 달콤함이 느껴진다.

한국학자와 무용가의 만남, 그것도 70대의 신혼부부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두 사람의 만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열린 미술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삿세 교수는 호남지방을 여행하고 있던 홍 씨와 우연히 재회했다. 그리고는 제주도와 남해지방 여행을 함께 다녔다. 보이지 않는 인연의 줄은 두 사람을 부부로 엮어주었다. 지난해 4월 삿세 교수가 거주하는 전남 담양의 목조 기와 한옥에서 약혼식을 올렸고, 10월 두 사람은 제주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9일 한글날에 제주돌문화공원에서 독특한 결혼식을 올리며 문화계의 큰 이슈가 됐다. 이들은 전통 평양식 혼례와 함께 신랑신부가 한복을 입고 하늘 연못에서 만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결혼식 전체를 하나의 축제로 즐겼다.

"기자들을 어찌나 많이 만났는지 힘들었어요. 그래도 참 멋진 결혼식이었어요. 우리 결혼식 동영상을 꼭 한 번 보세요." 신혼부부는 아직 결혼식의 설렘과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가창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일주일 이상 대구에 머무른 웨르너 삿세. 비가 많이 내렸지만 삿세 교수는 특히 가창의 산 풍경에 푹 빠졌다.

그는 갤러리 전시장 바닥에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맨발에, 먹빛 개량한복 차림이었다. 장마 끝에 찾아온 무더위와 작품에 대한 몰입으로 이미 땀에 흠뻑 젖었다. 그는 커다란 붓에 먹을 찍어 거침없이 한지 위를 내달렸다. 그의 붓끝에서 가창의 풍경은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는 전시를 하는 곳의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지역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나야 하거든요. 내가 작품을 전시할 그 방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전시실 모양과 분위기를 다 고려하지요."

한국 작가들마저 동양화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그에게 동양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먹과 한지가 좋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이전에는 템페라, 유화, 수채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해왔지만 먹과 한지를 만난 후부터는 한국화를 그리고 있지요."

그의 작품은 한지와 먹을 사용하는 동양화로 분류되지만, 추상성이 돋보인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마음의 풍경이다.

"제 그림은 산수화라기보다는 추상화에 가깝습니다. 산, 돌, 나무, 바다 같은 자연물을 즐겨 그리지만 그 풍경 자체는 아니지요. 그림과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독창성을 강조했다. 수많은 앤디 워홀의 아류작들, 작가가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작품들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전통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롭게 만나야, 전통과 현대, 미래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독일사람으로 동양화를 하는 것이요? 사람은 경험에 따라 변하는 겁니다.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홍신자와의 만남과 결혼도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관계없이 '운명'에 따른 것이다. 국경과 나이를 뛰어넘은 그들의 결혼은 그 자체로도 큰 화제였다.

서울에서 열린 미술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몇 번 만나고 금세 제 짝인 줄 알았다"고 했다.

삿세 교수는 유머가 넘치는 외국인이다. 우리 정서를 잘 이해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독일인이다. 그는 2006년 한양대 문화인류학 석좌교수로 임용되면서 아예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전에는 전남대 5'18연구소 초청으로 일 년간 한국에 머무른 적이 있다. 그는 그 얘기를 하면서 "여기 신문에는 이 얘기를 쓰지 말아 달라"고 농을 던졌다. 지역감정을 염두에 둔 농담이다. 역사와 문화, 지역감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그였다.

일행 중 누군가가 "삿세 교수가 한국을 그렇게 오랫동안 그처럼 사랑하더니, 한국으로부터 홍신자라는 큰 선물을 받으셨네요."라고 말하자, 삿세 교수는 환한 웃음으로 이를 긍정했다.

스스로 "나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어쩌면 전생의 한국인이 독일로 유배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 애정이 깊다. 전남 담양 한옥에 살며 수묵화를 그리고 시조를 읊는 풍류의 삶을 즐기고 있다.

70대의 만남과 결혼은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늙는다는 건 낡아빠지는 게 아니라 '퓨리파이'(정화)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것이 보인다. 젊음의 싱싱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연륜의 무게와 아름다움이. 그래서 늘 '지금'이 좋다."

홍 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은 깊은 연륜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사랑에 바로 지금, 빠져 있는 것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 웨르너 삿세 교수는?

1966년 전남 나주지역 기술학교 설립을 돕기 위해 내한한 후 한국의 매력에 빠져 4년간 한국생활을 했다. 그 후 그는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대 등에서 한국 문학을 강의하는 등 독일인 최초의 한국학자로 40년 이상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다. 고려 방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대 및 중세 한국어 연구 전문가인 그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독일어로 처음 번역한 저명한 학자다. 함부르크대 교수 재임 시절 유럽한국학협의회장을 역임한 그는 은퇴 이후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2006년 한국으로 아예 이주했다. 담양군 창평면 고씨 종가에 머물고 있다.

※ 무용가 홍신자는?

1967년 스물일곱 늦은 나이로 뉴욕에서 춤에 입문했다. 1973년 파격적 형식의 무용 '제례'(祭禮)로 "동양 미학을 서양의 전위무용에 구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세계적인 무용가 반열에 올랐다. 한창 활동하던 30대 후반 훌쩍 인도로 떠나 라즈니시에게서 명상과 구도의 춤을 익혔다. 1993년 영구 귀국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터를 잡고 '웃는돌 무용단'을 이끌며 자연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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