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샤구 나자드!"(Ni Shagu Nazad!'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독일군의 질풍 같은 진격에 소련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던 1942년 7월 28일 스탈린이 내린 명령 227호이다. 이 명령은 그보다 앞서 1941년 8월에 발동한 명령 270호("항복하거나 포로가 된 자는 조국의 배신자로 간주한다")에도 소련군이 여전히 '당나라 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이 명령에 따라 소련 병사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다. 전선을 이탈하거나 돌격 명령에 머뭇거리는 자는 내무인민위원회(NKVD)의 총살부대에 즉결 처형됐다. 이렇게 해서 독소전 동안 총살형을 선고받은 소련군은 15만 8천 명에 달했다.
총살부대의 처형을 운 좋게 면한 병사의 운명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이들은 '형벌대대'에 배속돼 총알받이로 쓰였다. 그 수는 무려 44만 2천 명이나 됐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가혹했다. 지뢰밭을 앞장서서 지나가거나 독일 공군기의 공습을 받으며 독일군 진지로 돌격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주저하거나 도망치면 뒤에서 NKVD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이들이 사면받는 길은 오직 한가지, '자기 피로써 죗값을 치르는 것' 즉 죽거나 중상을 입는 길밖에 없었다.
이런 가혹한 군율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소련은 초반의 궤멸적 패배를 딛고 독일을 무너뜨렸다. 역사학자들은 소련의 승리가 전적으로 이 같은 강압과 공포의 산물은 아니지만 소련군이 정신을 차리는 데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방부가 병영 문화 개선 방안의 일환으로 병사 간 명령'지시를 '일절' 금지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금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전투 등 비상 상황에서도 이 규정이 적용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교나 부사관이 전사한 상황에서 선임병이 내린 공격 명령을 후임병이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평화 시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예를 들어 순찰로 보수 같은 힘든 작업을 하면서 '고참'의 지시를 '졸병'이 듣지 않는다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까. 군대는 명령과 위계가 생명이다. 본질적으로 민주적일 수 없는 조직이다. 병사 간 명령'지시 금지가 병영 내 폭력과 가혹 행위를 근절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대신 군대는 군대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병사 간 명령'지시 금지 이후 군을 유지할 질서는 무엇인가. 국방부의 대답이 궁금하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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