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먹을거리 골목탐방] 안지랑 곱창 골목

몇인분 없이 '바가지'로 계산 "맛, 양 푸짐"

이젠 음식도 문화다.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경상도 음식은 맵고 짠 것이 특징이다. 전라도 음식은 감칠맛, 서울 음식은 화려하다. 충청도는 담백하고 구수하며 소박하다.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양념곱창의 명소

연탄불 위 석쇠를 걸치고/ 쫄깃쫄깃한 곱창과 떡볶이까지/ 지글~ 지글~ 곱창이 익어가는 소리/ 그 구수한 냄새와 소리, 맛을 즐기며 밤늦도록 대화가 이어진다. 요즘 안지랑 곱창 마을의 풍경이다.

대구 남구 대명 9동 안지랑시장에 42개의 곱창집이 밀집해 있다. 38년 전 한 곱창집에서 출발해 현재 양념곱창 전문 골목으로 발전했다. 가격이 저렴하여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특히 담백한 맛으로 신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아 주말이나 휴일뿐 아니라 사시사철 젊음이 넘치고 있다. 20, 30대 여성과 대학생이 주 고객층. 요즘은 저녁이 되면 '젊음의 거리'로 활력이 넘친다. 소문이 나면서 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양념곱창을 즐기러 찾아오는 마니아도 많다. 가끔 외국인도 찾아온다.

명실공히 대구의 대표적인 먹을거리 골목으로 정착했다. 안지랑 곱창 골목의 특징은 40여 곳의 업소가 있지만, 호객행위는 없다. 손님들이 맘 편하게 좋아하는 집을 선택할 수 있다.

모든 점포는 같은 모양의 분홍색 간판을 달고 있다. 원료도 깔끔히 포장된 삶은 곱창을 전문 공장에서 공급한다. 가격도 곱창 한 바가지(500g)에 1만원으로 모두 똑같다. 3년 전 상가번영회의 주도로 변신에 성공했다.

안지랑 곱창 맛은 초벌양념을 한 곱창을 연탄불 위 석쇠에 올려 노릿하게 구운 후 된장양념에 찍어 먹는 데 있다. 양념 곱창은 1인분, 2인분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냥 커다란 바가지에 가득 퍼준다. 한 바가지에 1만원이다. 대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만족하게 해 줄 만큼 푸근한 양이다. 막창도 있다. 150g에 7천원이다. 대구사람의 넉넉한 인심을 반영하고 있다.

오후 5시쯤부터 새벽 2시까지 구수한 곱창구이 냄새가 온 동네에 퍼진다. 요즘 같은 고물가 세상에 1만원이면 3, 4명의 친구들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7시 30분. 안지랑시장 곱창 골목을 방문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손님들로 활기가 넘쳤다.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연탄 화덕 주변에 둘러앉아 곱창을 구우며 소주를 마시는 등 활발한 분위기다. 인기가 많은 집은 벌써 자리가 없다. 오후 9시쯤 되면 모든 가게에 손님이 가득 찬다.

방학이라 보충수업을 마치고 온 경화여고 1학년 이예진·이희원·구경진·유영현 양 등 4명의 친구가 젊은이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희원(17) 양은 "가끔 가족과 함께 왔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친구와 함께 왔다"고 했다. 이예진(17) 양은 "처음 와 봤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쫄깃한 곱창 맛이 정말 좋다"며 "다음 달에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외국인과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안지랑 양념곱창골목 상인회

# 상인들 영업 규정 준수 최고…"질서유지 '보안관' 덕분이죠"

"우리 안지랑 양념곱창 골목은 전국에서 가장 질서정연한 모범적인 곳이라고 자부합니다."

안지랑곱창상가상인회 우만환(64) 회장은 안지랑 곱창골목의 '질서를 유지하는 보안관'이다. 같은 업종이 집단으로 형성된 곳은 자칫 업소 간 지나친 경쟁으로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지랑 곱창 골목은 업소 간 마찰은 전혀 없다.

여름철에는 가게 바깥으로 나와 길거리 영업을 하지만 단 한 집도 '규정선'을 넘지 않는다. 서로가 철저하게 규칙을 준수한다. 이처럼 안지랑 양념곱창골목이 질서정연한 곳으로 정착하기까지 우 회장과 임채일(45) 총무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지랑 곱창 골목에서 우 회장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대구시 남구의회 의원 출신인데다 모든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 자연스럽게 상인들도 우 회장을 존경하면서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다. 안지랑 곱창 골목은 올해 미소 친절업소 대상도 받은데다 상인들이 연합해서 장학회도 설립, 연간 모범 중고생 9명을 선발해 1인당 80만원씩 총 7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 회장은 "간판도 깔끔하게 정비하고 골목 이름도 임병헌 구청장이 '젊음의 거리'라고 지어준 덕분인지 요즘 전국의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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