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한나라당 공천 물갈이론 신중하지 못하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들의 발언에서 촉발된 물갈이론의 파장이 심상찮다. '40%대 물갈이'나 '존재감 없는 영남권 다선 중진 의원이 주요 대상' '연말 연초면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할 의원들이 나올 것'이라는 발언에 공감하는 의원도 있지만 일부는 격앙한다.

현재까지 나온 주요 당직자들의 물갈이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선거 참여 연령대의 분포상 고령자들의 용퇴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당이 어려울 때 자기희생을 하는 분들이 나와야 한다는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발언은 설득력이 있다. 이기는 선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말은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절박한 입장을 대변해 준다.

그러나 중진들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다. 용퇴 운운에 내놓고 반발한다. 이들은 인위적 물갈이는 당내 분란만 일으킨다며 반대한다. 초선 의원이 절반이 넘는 지금 국회가 비정상적일 뿐 국회는 노장청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라며 나이와 다선 여부는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특정 인사를 타깃으로 한 물갈이는 결국 편 가르기를 하겠다는 것이라고도 한다.

공천 물갈이는 당이 할 일이다. 공천의 속성상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확산되는 물갈이론은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고에 신음한다. 청년실업은 줄어들지 않고 이른바 알바 인생의 희망 없는 삶은 개선책이 보이지 않는다. 극과 극으로 나뉜 사회 양극화의 해법도 나오지 않고 있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바라는 것은 의원들의 면모를 바꾸어 달라는 게 아니다. 말로만 민생 문제 운운 말고 고민하고 실천해 달라는 것이다.

물갈이론의 주요 대상지가 영남이란 점은 지역 유권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한나라당 주변에서 영남은 서울 강남과 함께 꽃밭으로 통한다. 공천만 받으면 그대로 당선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묻지마식의 높은 지지율을 보여 준 결과 지역 정치권은 물갈이 대상으로 전락하고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은 그만큼 좁아진 것이다. 영남에도 바꾸어야 할 의원들이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지역 유권자가 해야 한다.

섣부른 물갈이론은 자칫 또 다른 계파 싸움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미 영남은 친이 친박의 싸움터가 된 전력이 있다. 물갈이가 행여 계파 간 밥그릇 싸움으로 번진다면 지역은 또 왜곡된 정치의 볼모가 된다. 특정지역을 물갈이 지역으로 꼽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 지역 유권자의 지지에 대한 자기부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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