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요, 아파요."
8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쉐윈리누에(44) 씨는 신음했다. 취재진이 말을 걸자 가슴에 손을 얹고 한국어로 "아파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얀마에서 온 쉐윈리누에 씨는 비 오는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동료 미얀마인들은 돌아가며 병실 밖을 지켰다. 쉐윈리누에 씨는 평일에는 노동자로, 주말에는 '미얀마 사원'에서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미얀마인들을 도와왔다. 동료들은 이제 그가 도움을 받을 차례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마음 밖엔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불안한 삶, '미등록 노동자'
사람들은 그를 부를 때'불법'이라는 말을 꼭 붙였다. 쉐윈리누에 씨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다. 2003년 한국에 와 울산에서 배 만드는 일을 했고 3년 뒤 방문취업비자가 만료됐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서였다. 울산에서 대구로 옮겨와 한 염색공장에 취업을 했다.
불법의 대가는 불안이었다. 정부가 미등록 노동자 집중 단속에 나설 때면 공장 사장들은 '불법'인 이들만 골라내 해고했다. 단속에 걸릴 경우 고용주는 최대 2천만원까지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 공장을 떠도는 불안한 삶이 이어졌다. 그런 불안조차 이젠 일상이 돼 버렸다.
이번 사고도 일감을 찾아다니다가 생겼다. 대구 염색공장에서 지난달 해고 통보를 받은 그는 경북 성주에 일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달 4일 비가 많이 내렸던 날 친구 오토바이를 빌려서 성주까지 달려갔다.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장 사장은 "최근 단속이 심해져 취업방문비자가 없는 외국인을 채용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지친 어깨를 안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 공장 주변 내리막길에서 사고가 났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내리막길 아래 벽에 심하게 부딪혔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졌다.
◆미얀마인들의 아빠
돈을 벌기 위해 찾았던 곳에서 몸과 마음의 짐만 얻었다.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든데 병원에 누워있으면 병원비 수백만원이 금세 빠져나간다. 담당 의사는 "늑골 골절로 뼈가 폐를 찔러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척추와 쇄골, 두개골과 견갑골(날개뼈)까지 부서져 성한 곳이 없다. 현재로선 수술을 해도 하반신 마비까지 우려되는 상황.
그의 사고는 미얀마인들 모두의 슬픔으로 커졌다. 현재 대구경북에는 100여 명 남짓한 미얀마인들이 살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대구 '미얀마 사원'에서 쉐윈리누에 씨는 회장으로 일했다. 한국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아빠 같은 존재였다.
사소한 건강 문제부터 한국 생활 고민까지 다 들어주고 해결해주었다. 취재 중 미얀마어 통역 도움을 준 타타우(23'경북대 사회학과 4학년) 씨는 "쉐윈리누에 씨는 다른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면 병원까지 직접 데려다줬다. 매주 일요일 사원에서 밥을 지어 주변에 나눠줄 만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쉐윈리누에 씨를 돕고 싶다. 하지만 막막한 슬픔을 안고 가슴만 칠 뿐이다. 단속을 피해다니는 미등록 노동자가 상당수인데다 자신들도 먹고살기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수천만원에 이르는 병원비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숫자일 따름이다.
◆가족에게 차마 말 못해
쉐윈리누에 씨는 이제 한국을 떠나야 한다. 아픈 몸으로 공장에서 일할 수 없을뿐더러 미등록 노동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추방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 미얀마 작은 도시 '바고'에 살고있는 가족들이 있다. 부모님과 아내, 세 자녀를 포함해 할아버지와 처남 2명 등 모두 10명의 식구가 한집에 산다. 미얀마의 한 달 평균 임금이 우리 돈 4만원 정도. 그가 한국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갔던 것도 대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책임 때문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보내주려고 한국에서 따로 집도 구하지 않고 사원에서 먹고 잤다.
그의 친구들은 쉐윈리누에 씨 가족에게 사고 소식을 차마 전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올 수 없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짐만 얹어주는 것 같아서다. "몸이 조금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했을 뿐이다. 쉐윈리누에 씨는 일주일간 발생한 병원비 260만원을 가까스로 계산했다. 미얀마인들을 돕는 한 택시 기사가 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천천히 갚으라"며 260만원을 빌려준 덕분. 한국인의 정으로 첫 번째 고비는 넘었지만 앞으로 생길 병원비가 문제다. 산업재해도 아니고 미등록 노동자인 탓에 지원을 받을 곳도 없다. 쉐윈리누에 씨는 세상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를 기다리는 이유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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