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재들이 전하는 영재학교 합격 비결

이공계 영재교육의 산실인 전국의 과학영재학교는 대구과학고를 비롯해 서울과학고, 경기과학고, 한국과학영재학교(부산) 등 네 곳이다. 이공계로 진로를 설정한 초'중학생들에게는 '꿈의 학교'로 불린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기는 쉽잖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재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입학이 허락된다. 대구과학고 경우 2012학년도 입학전형 경쟁률이 24.6대 1에 달했고, 경기과학고는 24.3대 1, 한국과학영재학교 17.8대 1, 서울과학고가 17.1대 1이나 됐다.

최근 이승재(청구중 3년) 군은 대구과학고, 강다현(관음중 2년) 양은 한국과학영재학교, 백경윤(대구동중 3년) 군은 서울과학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집안에서부터 자연스레 학습 분위기가 형성돼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는 점과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 출신이라는 점 등이 공통분모다. 과학영재학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이들이 거친 신입생 선발과정과 합격하기까지의 노력을 들어봤다.

◆청구중 이승재 군(대구과학고 합격)

이 군의 장래희망은 천체 물리학자다. "주변에서 순수 과학을 공부하면 돈을 별로 벌지 못한대요. 하지만 우주 탄생이나 세상을 이루고 있는 입자 등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갈 때 너무 재미있어요. 정말 원하는 걸 하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요?"

5일 이 군은 대구과학고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들었지만 합격 사실은 그전에 알았다. 전체 모집 인원 99명 중 자기주도학습전형(거경전형)으로 우선 선발하는 30명 안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서류 평가와 면접으로 이뤄진 전형이었는데 6, 7명씩 조를 짜 치르는 집단면접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우리가 대구과학고 학생이라 생각하고 축제 때 선보일 연극을 만들어보라더군요. 뜻밖의 주제였죠. 조원들과 머리를 맞댄 뒤 학교 내 체벌 문제를 다루기로 하고 찬, 반 양론을 고루 담았어요. 전 활발한 성격이어서 교실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 역할을 맡았고요."

이 군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아버지가 학원을 운영하며 영어를 강의하고 어머니는 수학을 가르치는 터라 어릴 때부터 집안 환경은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초교 4학년 때는 대구교대 영재교육원에 들어갔고 이듬해부터는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에서 물리 공부를 하고 있다. 다른 과목보다 어려워 문제 해결 후의 성취감도 크다는 점 때문에 물리 분야가 더욱 매력적이라고 했다.

초교 때는 실험을 많이 해볼 수 있는 학원을 다니며 과학 공부에 흥미를 붙였다. 본격적으로 영재학교 입학 준비를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말부터. 한국과학아카데미축전(KSASF)과 각종 탐구토론, 실험 대회에 부지런히 참가했고, 영재교육원에서 수학, 과학 심화과정을 공부했다. 3학년 1학기까지 수학, 과학 고교 과정을 끝냈다.

이 군은 영재학교 준비생들은 심화 과정과 학교 내신 성적 공부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화과정에 신경을 쓰다 내신 성적을 못 챙겨 입시에 실패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는 중간고사 시작 전 2주, 기말고사 시작 전 3주 동안은 집중적으로 내신을 챙기는 기간으로 설정했어요. 인터넷 강의를 이용하기도 하고요. 나머지 시간에는 영재학교 시험 준비에 투자했죠."

◆관음중 강다현 양(한국과학영재학교 합격)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데다 중학교 2학년인 여학생이 영재학교에 합격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한국과학영재학교 합격자 149명 가운데 중학교 2년생은 17명. 그 중 여학생은 강 양을 비롯해 3명에 불과하다. "내년에 다시 지원할 마음을 먹고 이번에는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응시했는데 뜻밖에 합격 소식을 들어 놀랐어요."

강 양은 초교 때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 기억이 없다. 대신 시낭송 대회, 영어노래 부르기 대회 등 각종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즐겼다. 그런데도 5학년 때 대구교대 정보영재교육원에 들어갔고, 중학교 입학 후엔 경북대 정보영재교육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에서야 학원에서 수학 심화과정을 1년 정도 들었을 뿐이다.

강 양의 숨은 조력자들은 가족. 서울과학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오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오빠가 보던 과학 자습서를 읽다 막히는 것이 있으면 전화를 걸어 물어보곤 했어요. 주말과 방학 때 오빠가 집에 오면 옆에 붙어 함께 공부하기도 했고요."

여기에 아버지인 대구과학대학 반도체전자과 강봉휘 교수의 보살핌도 힘이 됐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오빠와 함께 컴퓨터를 분해해보고 로봇 얘기를 나누면서 과학에 재미를 붙이게 된 것. 덕분에 수학, 과학 공부를 스스로 챙기면서도 지겨운 줄 몰랐다.

"신문을 보면 과학 관련 기사를 늘 스크랩해 읽었고, 인터넷에서 찾은 고교 수학 문제를 풀다 밤을 새우기도 했어요. 하루에 11시간씩 약 2주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래밍 공부에 빠져들기도 했고요."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카이스트 부설 고교다. 강 양은 카이스트에서 여는 체험 캠프를 찾고 안철수 연구소가 주최한 V스쿨(청소년 보안, 해킹교육)도 방문하면서 카이스트에 진학, 컴퓨터 공학도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직 다른 합격자들에 비해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어린 학생들도 꿈이 있다면 도전해보길 바랍니다. 실패하면 어때요.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대구동중 백경윤 군(서울과학고 합격)

백 군에겐 중학교 2학년 때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백성옥)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갔던 것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학회 주제는 '대기오염과 환경보건'이었는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를 비롯해 하버드, MIT 등 유명 대학 교수들이 강연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죠."

백 군은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다. 초교 1년 때 한 해 동안 온 가족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현지 학교에선 '수학 천재'로 불렸을 정도. 초교 5학년 때는 수학 심화과정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이듬해 경북대 영재교육원에 들어갔고 현재는 동부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에 다니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인 영재학교 시험 준비에 들어가 과학 고교 과정을 모두 마쳤고, 특히 좋아하는 물리 과목은 대학 과정까지 손을 댄 상태다.

"물리는 참 재미있는 과목이에요. 상급 과정으로 갈수록 실생활과 가까워지거든요. 예를 들면 자유 낙하만 해도 고학년 과정이 될수록 공기저항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죠. 물리 책 속 원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게 즐거워요."

백 군은 학원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효과를 거두려면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저도 한국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다녔어요. 다만 그날 배운 내용은 반드시 그날 복습한다는 원칙을 지켰어요. 그래야 배운 내용이 진짜 자기 것이 됩니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하루 4, 5시간씩 확보하려는 노력도 빠뜨리지 않았다. 서울과학고 시험을 치르기 두 달 전부터는 학원 수업이 끝나는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집 앞 독서실을 찾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백 군은 아직 장래희망을 구체적으로 정하진 못했다. 고교 수업을 들으며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그쪽으로 진로를 정할 생각이다. "현재로선 생명과학 분야에 관심이 갑니다. 어느 분야가 됐든 훌륭한 인재를 키우는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룰 수 있는 꿈이라 믿습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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