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불볕더위로 유명하지만 내세울 만한 특징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가로수가 많다는 것이다. 도심 곳곳에 도열해 있는 푸른 가로수에 놀라 "나무가 이렇게 많은데도 대구가 더운 이유가 무엇이냐"며 반문하는 외지인들이 많다. 사실 더위 때문에 그늘을 만들 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지금은 도심 경관을 멋지게 살리고 있다.
풍성한 도심 가로수는 대구시가 '나무 심기'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시는 1996년 제1차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벌였다. 이후 10년 동안 3천200억 원을 투입, 1천만 그루를 심었는데 관목을 제외한 교목(喬木)만 500만 그루에 달했다. 당시 문희갑 시장은 IMF 외환위기 중임에도 가로수에 집착하는 바람에 '나무 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도로마다 심을 나무의 수종까지 시장이 친절하게(?) 지정해 주는 바람에 환경녹지국장이 편하게 지냈다는 우스개까지 나돌았다.
그리고 2007년부터 2차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벌여 지난해까지 또 80만 그루의 교목을 심었다. 그런 덕분인지 최근 대구의 여름 날씨가 10여 년 전에 비해 1, 2℃ 낮아졌다는 비공식 통계가 나돌 만큼 시원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대구의 가로수 거리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맞아 제 빛을 발하고 있다. 도심을 두 바퀴 도는 마라톤 코스 대부분이 수십 년 된 가로수로 덮여 있어 선수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코스 대부분을 꽃으로 단장한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 '띠 녹지'에는 맥문동과 코스모스를 심어 초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동대구로에는 지금 맥문동 보라색 꽃과 배롱나무 붉은 꽃이 한창이다.
가로수가 빈약한 도로변에는 피튜니아, 골드메리, 국화 약 2천 화분을 진열한다. 다음 주에는 벼 2천 화분을 내놓아 도로를 더욱 푸르게 할 방침이다. 가로등에는 꽃걸이를 하고, 교량에는 꽃벽을 만든다. 시민들은 집에서 기른 화분을 도로에 내놓기로 했다. 마라톤 코스를 장식할 꽃이 약 60만 송이쯤 된다고 하니 '꽃길 마라톤'이 틀림없다.
이제 코스 도로에는 선수들을 위한 녹색 유도선이 선명하게 그어졌다. 이렇게 정성스레 꾸민 길 위에서 9월 4일 오전 9시 세계 건각들의 잔치가 시작된다. 새로운 명품 '대구 마라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런 세계적인 명품이 일회성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어떻게 승화시켜 나갈지 대구는 고민해야 한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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