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박근혜 대세론'과 '문재인 대망론'

고성국(정치평론가, 정치학 박사)
고성국(정치평론가, 정치학 박사)

고성국(정치평론가, 정치학 박사)

2012년은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해다. 그만큼 선거의 의미가 크고 무겁다. 21세기로 접어든 지 1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20세기 프레임에 갇혀 있는 우리 정치와 사회 일각의 지체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면 내년 선거는 말 그대로 정치구도, 세력, 인물을 모두 다 바꾸는 정초선거에 걸맞은 의미와 비중을 갖게 될 것이다.

2012년 대선과 총선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야권이다. 문재인이 손학규를 추월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박근혜에 맞설 야권 후보가 최종적으로 확정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혼전 양상과 돌출 변수의 출현이 역동적으로 계속될 것임을 예감케 한다.

문재인에 대한 기대와 손학규에 대한 실망은 동전의 양면이다. 손학규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선택한 야권의 지지자들이 더 가능성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문재인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현실적 계산과 대의명분 모두 간명한 설명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길 후보로 몰아주자. 이제는 정권탈환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호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문재인은 '호남기반의 영남후보 필승론'이라는 2002년의 '노무현 신화'를 재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의리남' 이미지와 공수부대 경력은 노무현의 약점이었던 '소수파 이미지' '좌파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문재인에 대한 기대가 '문재인 대망론'으로 모아지고 있는 이유다.

박근혜의 흔들리지 않는 30%대의 지지율은 2012 총선'대선을 전망함에 있어 어떤 변수보다 중요하다. 30%대의 지지율을 흔들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는 손학규의 부상도, 문재인의 돌풍도 모두 '찻잔 속의 태풍'으로 가두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대세다.

'대세'란 정치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대세는 '이대로 가면 이긴다'는 뜻이다. 이대로 가기 위해서는 변수를 줄여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대세는 '이대로 가면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세를 뒤집고 이기려면 이대로 가선 안 되고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대세냐, 아니냐'의 문제는 상황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과 행동의 문제인 것이다.

여권의 가장 큰 불확실성은 대권주자와 대통령의 관계에서 온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다투게 되면 여권의 분열이라는 불확실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 결과가 파국적이었음은 이회창 대세론이 허무하게 무너진 1997년 사례가 웅변하고 있다.

박근혜는 8'21회동과 6'3회동을 통해 이명박과 손을 잡고,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재창출을 공언했다. 여권의 고질적 문제인 대통령과 대권주자 간 갈등과 분열로 인한 불확실성을 원천제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던 것이다.

범여권의 통합과 공천혁명 또한 현실정치에서는 충돌하기 쉽다. 공천혁명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의명분에 입각해 물 흐르듯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위에서 밀어붙인 1996년 사례보다 지도부와 중진의원 27명이 자발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2004년 사례가 더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은 대선 전초전이다. 총선에서 이겨야 대선이 보인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이기면 박근혜 대세론은 더욱 강화하고 선거는 해보나마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역도 성립될까?

박근혜 지지자들은 비록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패하더라도 박근혜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결집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 참패하더라도 여권에는 박근혜를 대체할 다른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총선을 통해 대선을 바라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대선의 프레임에서 총선을 바라보기도 해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그 누구도 분위기나 영향력만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힘은 세에서 나오고 대중의 지지에서 나오며 자유자재로 구사되는 전략과 전술에서 나온다. 직업 정치인의 삶을 치열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공개적'공식적으로 천명하는 것은 대통령에 도전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세다. 박근혜가 10여 년 전에 행동했듯 문재인도 뜻이 있다면 '대망론'을 '대안론'으로 만들어 '박근혜 대세론'에 맞설 힘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의 대세에 맞설 문재인의 정치가 과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인가. 올가을, 한국 정치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편의상 존칭과 직함은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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