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마음의 책] '소도시에서 만난 한국' 아날로그 감성에 호소

소도시 여행의 로망: 대한민국 빈티지를 만나다/고선영 지음/시공사 펴냄

2011년 여름도 이제 정점을 지나고 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달리다 보면 계절의 변화에도 무감해지곤 한다. 그러다 잠시 멈춰서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 우리는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막상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소박하면서도 여행지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소도시 여행의 로망: 대한민국 빈티지를 만나다'가 그 해답과 함께 여행의 새로운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목차에 등장하는 도시들 중 그 어떤 곳으로든 그저 떠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지은이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도 좋다. 지은이는 '대한민국의 빈티지를 찾는 여행'이라는 이 책의 콘셉트에 맞게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여행자의 취향과 눈높이에 맞추어 소도시들의 구석구석을 안내한다.

지은이 역시 초보 여행자 시절에는 새로운 곳이면 다 좋았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멋진 풍경을 좇으며 맛있는 음식과 잘 지은 리조트를 찾아다녔고, 지금은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소도시 여행의 로망'은 지은이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었던 그 동네에 대한 기행문이라 할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도시들의 이름은 모두 낯익다. 심지어 지은이가 소개하고 있는 소도시들 중 직접 다녀온 곳도 꽤 된다. 그런데 가본 곳이나 그렇지 않은 곳이나 모두 낯설게만 느껴지니 이상한 노릇이다. 특히 2년 전 다녀온 경남 남해의 경우 다랭이마을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었으면서도 지은이가 소개하는 유자잎막걸리는 있는 줄도 몰랐다. 뒤늦게 남해 여행은 허투루 했다는 아쉬움이 컸던 나머지 올여름 휴가는 이 책과 함께 다시금 그곳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시골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달큰한 유자잎막걸리와 해물파전도 맛보고, 돌담 사이로 난 좁을 골목길을 따라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제야 안 보이던 풍경이 보이고, 구수한 경남 사투리도 정겹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그토록 많은 것들을 과거에는 놓쳤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지은이와 달리 지금껏 나는 여행지에서 항상 '이방인'으로만 머물렀다. 스스로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 그 이상이 되길 원하지 않았으니 그들도 내게 관광상품 그 이상은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지은이는 안동을 시작으로 영월, 홍성, 하동, 강화 등지를 포함해 땅끝마을 해남에 이르기까지 이 소도시 여행에서 결코 사람들을 놓치지 않았다. 수십 년간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들에게 직접 마을의 역사를 전해 듣고, 그들의 일상을 보았으며, 문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이 소중한 경험들을 정감 있는 글과 사진으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조금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여행지의 삶과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동화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느 곳에서든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잠시 머무는 손님 대신 그곳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야말로 여행을 만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가 곧 여행지의 자연스런 풍경이 되는 것! 결국 이것이 여행의 진짜 로망이지 않을까? 392쪽, 1만2천원.

최지연(대구문화예술회관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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