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발을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심장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발이다. 발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제일 신비로운 것은 아마 부처의 발에 얽힌 삽화가 아닐까 싶다. 부처가 고향인 카필라성 인근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십대 제자 중 하나인 가섭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한창 다비식이 진행되는 중이라 육신을 직접 대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가섭에게 부처는 관에서 두 발을 내밀어 보였다고 한다. 예수의 발에 대한 얘기도 있다. 제자인 유다에게 악마가 배반의 마음을 불어넣었던 그날 예수는 모든 제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한 명씩 물로 발을 씻어주었다.

관 밖으로 내밀거나 또 씻어준 것이 왜 하필이면 발이었을까? 이에 대해 경전은, 부처는 발로써 법(法)을 널리 알리라는 뜻이고, 예수의 경우는 사랑과 봉사로 남을 대하라는 가르침이라 해석한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두 성인이 죽음에 이르러 발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발이 몸의 맨 끝에 있는 부위여서가 아닐까. 다시 말하면 발에 이르도록 몸을 완성하라, 수신(修身)을 완성하라는 의미가 아닐런가. 몸은 우주의 상징이니 우주의 끝자락까지 살피라는 뜻도 되겠다. 만약 사람이 사자나 긴꼬리원숭이처럼 생겼다면 두 성인은 발이 아니라 꼬리를 내밀었거나, 씻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두 성인의 경우와 좀 다르긴 하지만 많은 이들도 발에 관심을 쏟았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후로 신성한 대지와 닿아있는 인체의 유일한 부분이 발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옛사람들은 대지의 기운을 발을 통해 취하려고 했던 것 같다. 용맹을 얻으려는 자와 지혜를 좇는 자들은 신발을 벗으면서까지 대지와의 접촉을 늘렸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을 보면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맨발로 다니는 허풍선이'라고 비꼬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아테네인들이 샌들을 신긴 했으나 지혜로운 자들은 한겨울에조차 맨발로 길을 걸으며 사색을 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철학자 칸트, 작가 발자크, '맨발로 갠지스강을 걷다'라는 서신집을 남긴 마하트마 간디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대지와 접촉하는 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동양의학에서는 발을 신체의 축소판이라고 본다. 발바닥에서 12경락이 시작되고 발바닥의 부분부분이 오장육부와 세심하게 연결된다고 하니까, 발에 대한 의미가 이보다 더한 것은 없겠다. 동양의학으로 볼 때 맨발로 걷는 행위는 마치 알몸으로 대지와 접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어쭙잖은 소설을 쓰는 나도 발에다 많은 걸 의존한다. 작업실을 얻으면 맨 먼저 하는 게 산책로를 개발하는 일이다. 발자크나 칸트를 흉내 낼 의향이 없었는데도 언제부턴지 글을 쓰다 걸핏하면 산책로를 걷는다. 마감시간에 쫓겨 산책을 나갈 수 없을 때는 방 안을 뱅글뱅글 돌아다닌다. 새벽 5시쯤에 좁은 방안을 돌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밤새워 글을 쓰면 머리가 아니라 발바닥이 아프다. 글은 손으로 쓰되 생각은 발로 하는 것이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27일에 개막된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대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육상대회라는 게 '발의 축제'가 아닌가. 창던지기나 원반던지기 같은 종목도 있지만 대개가 발로 하는 것이다. 도구나 매개도 없이, 신발 외에는 문명의 도움을 받지 않고 발만으로 대지를 뛰어다니는 온갖 종류의 모음이 육상경기다. 치타처럼 빠르게 달리는 것에서 낙타처럼 오랫동안 걷는 것, 높이나 멀리 뛰는 것까지 실로 발의 축제라 부를 만하다. 기록 경신을 위해 질 좋은 신발을 개발하고 반발력이 우수한 트랙을 경기장에 깔긴 했지만 그래도 육상은 현재 우리에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반문명적인 유산임에 틀림없다.

인체의 맨 끝자락에 붙은 발이 '수신(修身)의 완성'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대지와 접촉을 원하는 발의 본능은 한 번쯤 돌이켜볼 만하다. 문명이 자전거나 자동차와 비행기를 개발해서 육체의 편의를 거들고 있지만 우리의 발은 땅을 그리워한다. 거꾸로 땅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땅은 한 술 더 떠,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사람에게는 더 건강을 주고 여느 때 이르지 못한 사색까지 선물하려고 하는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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