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3의 법칙'

지난주 토요일,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대구로 돌아오려는 길이었다. 새벽 6시에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아서 동대구로 향하는 리무진을 타기 위해서 정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동대구로 향하는 리무진 첫차는 7시 50분이었다. 여유가 있어 승차권을 구입하려고 공항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공항 관계자들에게 물어봐도, 리무진 승차권을 판매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7시 40분 정도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기자들은 혹시나 탑승하지 못할까 봐 산발적으로 정류장 앞에 모였다. 정류장은 다른 행선지의 버스도 공동으로 정차하는 곳인데다가 특별히 대구행 버스 대기선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다. 또한, 버스회사 관계자나 공항관계자 그 누구도 없었고, 여행자들의 짐이 으레 그렇듯 큰 짐까지 섞이면서 어수선함 그 자체였다. 이대로 버스가 도착하면 어떻게 될지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7시 45분경 버스가 도착했다. 출입문은 열릴 생각도 하지 않는데 너도나도 타려고 문쪽으로 밀기 시작했다. 그때 버스기사께서 "일단 예약하신 분 먼저 타야 합니다"라고 소리쳤지만, 일부는 상관없다는 듯 마구 올라타면서 기사와 충돌이 일어났고, 그 틈을 헤치며 예약자들은 하나둘씩 승차하기 시작했다. 다른 대기자들은 '예매를 어디서 해야 하나?' '터미널에서도 인터넷에서도 해당 노선은 예매가 안 되더라!' 등의 불만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예약자들이 탑승하고 추가로 10명만 탈 수 있다고 얘기하자 혼란은 절정에 도달했다. 치고 밀리고 소리치고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가방부터 던져놓고 두더지가 땅 파듯이 인파를 헤치고 탑승하기도 했다. 그 속에 아무 말 없이 어이없는 웃음만 짓던 필자는 그냥 그 속에서 빠져나와 버렸다. 꼭 이렇게까지 타야 하는 건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대구시민들에 대한 부끄러움, 국민에 대한 부끄러움이 복합적으로 쌓이던 순간, 혼란의 현장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던 외국인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 역시 대구로 가기 위해 온 듯했다. 그들 앞에서 알몸으로 있는 것처럼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입국해 목격하는 첫 모습으로 인해 공포와 당혹이 눈 속에 가득했다. '자칫하다가는 여기서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한국에서의 질서는 저렇게 이루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겠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첫차는 그렇게 출발했고, 각자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 꼭 제보하겠다며 촬영을 하는 사람, 불만이 있지만 표출할 수 없어 묵묵히 바라만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남게 되었다.

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 내가 꼭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증. 40분 뒤 도착하는 다음 버스 탑승 시에도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스스로가 용납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정류장 코앞에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플래카드가 너무나 잘 보이는 위치에 걸려 있었다. '우선 줄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앞을 보니 어느새 여행용 가방 서너 개가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줄을 따라 뒤이어 사람들이 서기 시작했다. 셋 이상이 마음을 모으자 아주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그렇게 정돈된 상황으로 기다리기를 30분. 필자는 외국인들이 표현 못 해 방황하고 있을까 봐 대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승차할 수 있게 하려고 돌아봤지만 이미 그들은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리고 도착한 다음 버스에 대기자들은 차례대로 승차했다.

 '3의 법칙'이었다. 나, 그리고 나와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이 모이게 되면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상황이 되며 2명일 때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3명이 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며 전환점이 형성되는 법칙. 그것은 버스 정류장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뒤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가 대기자들을 질서정연하게 만들었다. 상황에 지배당할 것인가? 아니면 상황을 지배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전자도 후자도 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3은 작은 집단 즉, 사회로 여겨지며 강한 힘을 발휘한다. 3의 법칙을 만들어 내는 '1, 2, 3'은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니다.

손님들이 많이 오시고 있다. 1호, 2호, 3호, 출동준비 되었는가?

공태영(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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