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그리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

기기묘묘한 바위 보며 홍도의 비경 감탄 자아내

홍도는 그리운 섬이다. '그립다'는 말뜻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가까이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설렘, 기다림, 그리움 등이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음의 동요에서 오는 것들로 결국 '사랑'의 전초전에 깔리는 요소들이다.

홍도는 형편만 된다면 1년에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아름다운 섬이다. 눈을 감고 홍도를 그려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10년에 한 번 꼴로도 가보지 못했으니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 그러나 항상 가까이 있어도 사랑하지 않는 게 있고 멀리 있어 쉽게 보지 못해도 진정으로 우러나는 사랑 속에 피어나는 풍경도 있다. 홍도는 마음부터 먼저 끌리는 그런 섬이다.

'목포발 홍도행' 정기 여객선을 타고 내릴 때쯤 저만치 보이는 섬의 풍광은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해발 365m의 깃대봉을 정상으로 내려 긋는 능선의 스카이라인은 스케치 전문 화가의 연선(鉛線)처럼 부드러우면서 시원하다.

홍도를 처음 보면 세 번쯤 놀란다. 등산로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을 따라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일망무제로 탁 트인 바다와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듯한 바위섬들이 어떻게 보면 무질서 속의 질서가 연상될 만큼 그렇게 정연할 수가 없다. 치어다보는 산과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서로 대립과 역(逆)의 관계지만 묘하게도 조화롭다. 그래서 놀란다.

섬 일주 유람선에 올라 선장의 구수한 홍도의 전설을 들으면서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보면 홍도의 숨은 비경 앞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의 물빛은 날씨의 맑음과 찌푸림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빛 밝은 날의 바다는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 '맨몸으로 풍덩!'하고 뛰어들면 온몸이 천연염료로 염색이 될 것 같다. 그것은 색채의 마술사인 마르크 샤갈이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을 그리기 전 하늘로 날아가는 그림 속 사람의 얼굴빛을 푸르게 칠한 것이 연상되기도 한다.

바닷물은 결 따라 물빛이 다르다. 배가 지나가고 나면 일렁이는 파도는 잘 찍은 물결무늬 동영상처럼 망막 속에서 한참 동안 어른거린다. 홍도의 바다에는 샤갈뿐 아니라 피카소와 고갱이 즐겨 그렸던 원색의 색깔이 물결 따라 출렁이고 있다. 이것이 홍도의 매력이다. 그래서 놀란다.

홍도에서 일출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섬에서의 1박이란 엷은 흥분은 곧잘 술판으로 이어져 과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홍도의 아침 해는 저 혼자서 뜬다. 그러나 '홍도의 낙조'는 아무나 본다. 장님도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와아!'하는 함성을 듣고 귀의 눈이 열리게 된다. 생선회를 푸짐하게 차려둔 식당의 서창 너머로도 보이고 바닷가 산책길에서 맞는 해넘이는 주홍색으로 밑칠되어 있는 대형 캔버스를 보는 듯하다.

서해의 끝자락에서 생애 중의 귀한 하루를 마감한다는 것은 매우 신비로운 일이다. 태양이 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기 직전의 노을 색깔과 역광의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바위섬들이 만들어 낸 소묘는 정말 황홀하다. '홍도낙조'를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하지만 해를 등지고 붉게 불타는 홍도를 바라보는 것도 장관 중의 장관이다. 그래서 또 놀란다.

홍도의 풍광을 나열하다 보니 자칫 지나치고 넘어갈 뻔했다. 섬 일주 유람선을 타고 가다 경치가 물릴 때쯤이면 어부 두 사람이 탄 어선 한 척이 서서히 접근한다. 간재미회와 소주를 싣고 "한 접시에 2만원"하고 고함을 지른다. 눈은 풍경을 포식을 했지만 위장은 출출할 무렵이다. 뱃전에서 맛보는 홍도의 간재미회는 추억 속의 멋진 삽화 한 토막이다.

그래 홍도, 그리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야.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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