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대구 한 국회의원이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추태를 부렸다. 술자리에서 맥주병과 양주병, 접시를 던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 자리에는 당시 대구시장과 대구 국회의원, 지역 경제인들이 함께했다. 던진 병과 접시는 벽을 향했지만, 사실상 지역 경제인들을 겨냥했다. 이유는 한나라당, 아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무시 또는 홀대한다는 것이었다. 맥주병 투척은 그 국회의원이 '지역 경제인들이 예전에 비해, 또 당시 집권당에 비해 한나라당에 후원금을 적게 내고 소홀히 한다'고 푸념을 한 뒤 벌어졌다.
얼마 전 경북 한 국회의원도 성격은 다르지만, 회의장 바닥에 서류와 마이크, 열쇠를 내동댕이쳤다. 기초단체장, 부산국토관리청, 낙동강사업 공사업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낙동강사업 현장보고회' 자리였다. 이 국회의원은 낙동강사업에 지역민들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해당 직원을 다그쳤다. 이 의원은 수첩을 책상 위에 내던진 부산국토관리청 6급 직원의 불손한 태도에 흥분, 이 같은 행태를 보였다. 물론 '국민의 대표'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보인 공무원을 감쌀 여지야 없겠지만, 반말 조로 계속 다그치고 급기야 물건을 바닥에 내팽개친 의원의 행태에 더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다.
사실 대구경북 일부 국회의원들의 돌출 행동이나 추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맥주병 투척 사건의 당사자를 익명으로 신문에 보도했을 때 상당수 언론인과 지역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사자가 아닌 대구 A의원을 지목, "또 A의원 아니냐. A의원 맞지"라고 입을 모았다. 경북의 또 다른 국회의원은 맥주병 투척 사건 전해에 골프장에서 60대 경비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북 일부 시'군에서는 지난해 6'2지방선거 직후부터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의 갈등 양상은 점입가경이다. 문경 지역 이한성 의원과 신현국 시장은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지원 방식과 관련해 엇박자를 보이는 등 사사건건 충돌을 빚고 있다. 경산과 칠곡 지역도 국회의원과 단체장이 계속 갈등을 빚다 한쪽은 단체장이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구속됐고, 다른 쪽은 단체장의 선거법 위반으로 재선거를 치러야 할 형편이다. 영주와 울진도 국회의원과 단체장이 기 싸움을 벌이기는 마찬가지다.
심각한 문제는 국회의원과 단체장 간 불편한 관계가 아니라, 그것이 지역에 미치는 파장이다. 양쪽이 협력은커녕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지역 현안이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하다. 지역민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오만함이나, 지역 단체장과의 갈등 양상을 초래한 원류는 어디일까. 바로 '공천 괴물'이다. 지역 국회의원은 국민의 선택보다 정당 공천을 당선 보장의 더 중요한 요건으로 보고 유권자인 국민보다 공천권자인 중앙당의 눈치를 더 봐왔다. 또 자신이 막강한 공천권을 행사해 당선된 단체장에 대해서는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반면 공천을 받지 않고도 당선돼 눈치 보지 않고 단독으로 행정을 펴 가는 단체장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공교롭게도 경북의 '말썽 지역'은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과 그 국회의원의 공천 없이 당선된 단체장들이 포진한 곳이다.
참신하고 능력 있는 후보를 선별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공천제는 중앙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에 매달리고, 검은 거래가 오가는 괴물로 변질돼 왔다. 시도민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누가 공천 괴물에 얽매여 중앙당 눈치만 보는 인물인지, 누가 괴물 대신 국민을 제대로 섬길 인물인지 눈을 부릅떠야 할 즈음이다. 검은 뒷거래와 수렴청정식 행정의 소지가 높은 기초단체장 공천 괴물도 쫓아내야 한다. 국회의원과 단체장이 아귀다툼이 아니라 지역과 국가 발전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다.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공천은 재력만 있는 정치인들에겐 유혹에 빠지기 쉬운 달콤한 괴물일지 몰라도 국민들에겐 이제 신성한 권리를 갉아먹는 악(惡)일 뿐이다.
김병구(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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