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혁명과 뒷거래

러시아 10월 혁명은 악취 나는 뒷거래의 산물이었다. 당시 서부전선에서 영국과 프랑스,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와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던 독일은 서부전선에 집중하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속히 끝내야 하는데 이는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힘든 문제였다. 그래서 독일은 러시아의 '혁명화'라는 전략을 세운다. 러시아에서 정치적 격변이 생기면 러시아는 할 수 없이 화평을 제안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군사력을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를 위해 독일은 볼셰비키에 혁명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소수파인데다 자금마저 달렸던 볼셰비키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1917년 2월까지 볼셰비키는 인쇄기 한 대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극심한 재정난으로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한 자선 행사까지 벌여야 했다. 그러나 4개월 후 프라우다의 발행 부수는 32만 부로 늘었고 폴란드판, 아르메니아판 등 40여 개 판도 냈다. 당원들은 정기적으로 급료를 받기 시작했고 4월에 2만 3천 명에 불과했던 당원 수도 8월에는 20만 명으로 급증했다. 볼셰비키의 금고가 갑자기 두둑해진 것이다. 레닌이 독일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쏟아졌다. 스위스에 망명 중인 레닌이 2월 혁명 후 독일이 제공한 '봉인(封印) 열차'를 타고 안전하게 독일과 스웨덴을 거쳐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듯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의혹을 '더러운 중상'이라고 일축했지만 1945년 이후 독일 정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당시 독일 외상 리하르트 폰 퀼만이 1917년 9월 육군 최고사령관에게 보낸 메모는 그 효과를 이렇게 자랑하고 있다. "볼셰비키는 우리의 계속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절대로 오늘날과 같은 규모로 커질 수도, 그런 큰 영향력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모토는 '깨끗한 교육 혁명'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깨끗한 혁명을 하기 위해 더러운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고 있다. 본인은 선의로 돈을 건넸다고 하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그로 인해 '깨끗한 좌파'라는 믿음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트로츠키가 "흰 장갑을 끼고 혁명을 할 수는 없다"고 하긴 했지만.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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