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피를 먹는 것은
이처럼 팍팍하고 목이 메는 일이다
이것은 한때
선한 눈망울을 가진 어느 짐승의 몸속을
구석구석 헤매던 숯불들
죄 없는 몸을 데워주던 따뜻한 기억들
신의 제단에 바친
부드럽게 굳은 자줏빛 심장들
그러나 포클레인에 밀려 묻히던
눈망울과 마주친 후로
이것은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덩어리
굳은 채 흐르지 못하는 용암
생의 열기들 빠져 나간
곰보자국마다
살처분된 무력한 죄스러움들
남의 피를 먹는 것은 이처럼 등을 두드려도
가라앉지 않는 체증을 삼키는 일이다
박현수
우리 모두 흡혈의 자식 아닌지. 아버지의 땀과 어머니의 피를 먹고 자란 붉디붉은 출생들 아닌지. 또한 '피'라는 이 자극적인 단어는 미와 추, 생과 사, 애와 증, 명과 암을 내포하는바.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선짓국을 먹으면서 자랐으니. '피'로 끓인 그 국물을 맛있게 먹고 살았으니. 그리해도 아아, 참으로 아무 설명도 할 수 없게 만드는 하나의 일이 있으니. 어인 연유인지 대구의 대표음식을 '핏국'(따로국밥)이라 떡 하니 이름 올린 민망한 일이 그것인데.
현실이 정서를 웃도는 것인지 본능이 개념을 능가하는 것인지. 우리 주변엔 아무 여과 없이 진행되고 있는 일 허다해서 말 한마디 못하고 체증을 느끼는 일 어제오늘 아니지만.
선짓국 휘저을 때 소의 눈망울이 숟가락에 동동 뜨는 것 아닐까. 구멍 숭숭 피의 현무암 덩이 목에 걸리지 않을까. 모든 것을 먹을거리로 만드는 목숨 있는 것들의 비애가 슬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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