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란 역사가 오래된 가게를 말한다. 동양에서 '노'(老)라는 의미는 단순히 늙었다는 것 외에 존경의 뜻이 담겨 있다. 근대 이후, 이 땅에 태어난 수많은 가게와 기업들 가운데 '노포'라는 존칭을 받을 수 있을 만한 곳은 얼마나 될까? 또한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전통을 지켜야 노포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일보 기자인 이기창의 '한국 최고의 가게'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옹기는 사람의 피부처럼 숨을 쉽니다. 표면을 손으로 만져 거칠게 느껴지는 곳엔 예외 없이 숨구멍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간장이나 된장을 담가 놓으면 항아리 표면의 여기저기에 흰색의 소금꽃이 피는 겁니다. 예전엔 할머니들이 소금꽃을 보고 항아리의 됨됨이를 가늠했거든요."
반세기 넘게 옹기장이로 살아온 '양협토기' 대표 유수봉 씨는 옹기의 탁월한 효능과 가치를 이렇게 말한다.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용기의 발달에 이어 김치냉장고까지 등장하면서 옹기의 수요는 나날이 줄고 있지만, 5대째 옹기 굽는 일을 가업으로 삼아온 유 씨는 최고의 옹기를 굽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그는 아들에게 대물림을 해 6대째 옹기장이의 길을 걷게 할 계획이다.
"갓은 조상들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의관일 뿐 아니라 멋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선비들의 삶을 떠올리며 갓을 만들어온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4호 갓일 입자장(笠子匠) 박창영 씨에게 갓일은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만은 아니다. 그는 갓일을 선비들의 정신세계로 여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그의 고향 예천 돌테마을은 갓의 명산지로 유명해 마을의 80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갓을 지어 목돈을 만졌다고 한다. 박 씨의 증조부가 시작한 갓일은 그의 집안의 가업이 되었고, 그는 10대 후반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대구의 갓방에서 솜씨를 갈고닦은 뒤 25세 때 고향에 갓방을 차린 박 씨는 1960년대만 해도 시제를 앞둔 가을에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았지만, 어느 순간 수요가 뚝 떨어져 좌절감이 컸다고 한다. 지금 그는 방송사나 영화사 납품으로 활로를 열어 사극의 소품으로 갓을 공급하고 있다. 120년 동안 선비들의 정신을 담아온 장인의 집안답게 그의 두 아들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통문관은 한국학 연구의 사랑방이자 통로였습니다. 국문학, 역사, 고미술사 등 한국학분야의 원로학자들은 대부분 통문관을 사랑방처럼 드나들었습니다. 통문관은 그만큼 귀중한 전적이 많았을 뿐 아니라 경제적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회들의 사무실 역할도 했거든요. 심지어 한국어문교육연구회는 통문관 3층에서 태동했습니다."
아흔여덟이 되는 지금까지 고서의 향기를 벗 삼아 살고 있는 산기 이겸노 옹은 일제강점기 귀중한 고서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마구 유출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 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감정하고 구입했다. 이 옹은 1947년 창덕궁 장서각에 보관돼 있던 무주 적상산 사고의 조선왕조실록 도난사건을 조기에 발견해 더 이상의 훼손을 막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고객 하나에 옷도 하나'라는 철학을 고집하며 89년째 대를 이어 옷을 지어온 종로양복점, '피부병의 만병통치학' 이명래고약,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여 꿈을 파는 사람이 바로 사진작가'라며 인물 사진만을 고집해온 김스튜디오, '90년 된 붓의 명가' 구하산방, '사실을 담는 자세로 민족의 뿌리까지 찾는' 족보전문출판사인 회상사, '맛있는 호두과자만이 아니라 영혼을 풍부하게 해주는 생명의 빵을 소개하려고 노력했다'는 학화호두과자 등 이 책에서는 하나같이 대를 이어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한국의 노포들을 만날 수 있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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