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이제는 팔로워십이다

지난 주말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내년 총선'대선은 물론 코 앞으로 다가온 대구 기초단체장'광역의회 보궐선거를 위해 뛰는 이들도 있었다. 또 일부는 직접 대면하지는 못한 채 문자로만 인사를 나눴다. 요즘은 그것도 효과적인 소통의 한 방법이니까.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S는 근황에 대해 물어보자 "마음 정리 중"이라는 짤막한 답신을 보내왔다. 일찌감치 내년 총선 지역구 출마를 준비해온 걸 알기에 다소 의외였다. "혹 불출마 선언이냐"고 재차 묻지않을 수 없었다. '여의도 입성'이란 뜻을 세웠다가도 이런 저런 여건이 무르익지 않아 포기하는 정치신인의 하나로 남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다시 돌아온 답은 또 한 번 예상을 뒤집었다. "출사표를 던지기 전에 스스로 정말 준비가 되었는지, 잘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참신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정치정국이 예정보다 일찍 시작됐다. 19일 시작된 18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마저도 예년과 같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안철수 신드롬'이 내년 대선에서 재연될지 여부가 호사가들의 더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내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대구경북에서도 선거구별 판세 예측이 여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는 무수한 예비후보들에 대한 평가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갑자기 쌀쌀해진 가을 날씨만큼이나 차가워진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이 어떻게 표출될지가 관심 대상이다.

이쯤에서 조금은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대학 중퇴자인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가 출마한다면 과연 지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의 CEO 자격으로 나선다면 압도적인 지지를 받겠지만 청년 벤처기업가로만 소개된다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대구경북의 현역 국회의원들은 모두 '잘난' 인물들이다. 판'검사'변호사에다 대학교수, 고시 출신 고위관료, 성공한 기업가들이 즐비하다. 내년을 대비하는 예비후보들 가운데에서도 '외형'만큼은 현역 의원들에게 뒤지지 않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외적인 조건들이 훌륭한 리더의 보증수표가 아님을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교적 전통이 뿌리깊은 대구경북은 '사농공상'이란 구시대적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은 경제적 성공을 거둔 출향인사 가운데에는 고졸, 대학 중퇴자가 적지 않지만 이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지역의 문제점 역시 '과거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정서이다. 스타 플레이어가 프로 감독으로서도 꼭 성공하는 게 아닌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권력 획득이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지역에 필요하지 않다. 국회의원과 단체장을 잘못 뽑아 당한 지역의 불이익은 되돌이키기도 힘들었다. 깊은 고민 없이 자신의 스펙만을 믿고 고객이자 주주인 국민의 선택을 받으려 하는 이가 있다면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지역이 처한 상황을 냉철히 짚어보고, 선량으로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길 권한다. 그것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믿는다.

이상헌(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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