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오징어는 서민들의 먹거리였다. 가장 싸고 흔한 어종이었기에 식탁에 자주 올랐고 술안주에도 널리 쓰였다. 그런 만큼 오징어에 얽힌 추억이 많다. 소주 한잔을 마시고 마른오징어를 쭉 찢어 먹으면 기분이 그저 그만이었다. 잠깐 딴 짓 하다 보면 몸통은 누가 다 먹어버리고 다리 부분만 남아있기 일쑤였다. 요즘의 '버터구이 오징어'처럼 말랑말랑하지도 않은데 딱딱한 다리 한 개라도 더 씹으려고 친구들끼리 티격태격하던 기억도 난다.
예전에 아이들이 즐겨 하던 '오징어 가생'이라는 전쟁놀이도 있었다.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수비팀과 공격팀으로 나눠 깨금발을 하면서 밀고 끌어당겨 넘어뜨리는 과격한 놀이였다. 땅에 그은 줄의 모양이 오징어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고 '가생'은 가이센(會戰'전투)이라는 일본말이다. 요즘에는 이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없다. 축구공이나 야구 배트를 구하기 어렵던 시절에나 가능했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추억의 놀이다.
오징어라고 하면 작은 어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1800년대 말 뉴질랜드 해안에서 발견된 대왕오징어는 길이가 18m나 됐고 몸무게는 1t이 넘었다고 한다. 대왕오징어는 수심 300~1천m에서 살기에 인간의 눈에 발견되지 않을 뿐, 10m 넘는 것도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징어를 괴물로 등장시킨 할리우드 영화가 여럿 있다. '심해의 습격자'(1996년), '딥 라이징'(1999년)에서는 오징어가 인간을 공격해 잡아먹는 포식자로 나온다.
동해안 풍경과 오징어는 빼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오징어 말리는 모습이 바닷가를 찾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해변 백사장, 철조망, 콘크리트 제방, 담장을 가리지 않고 오징어를 널어놓은 풍경은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풍경을 전혀 볼 수 없다.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어획량이 줄어들더니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도 채 잡히지 않는다. 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바닷가에서 말려 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한다. 포항 구룡포와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배들이 출어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수확철에 냉수대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지만 북한 해역에서 중국 쌍끌이 어선의 싹쓸이도 문제라고 한다. 이러다간 서민들의 먹거리가 추억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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