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코스모스 같은 첫사랑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산울림의 노래 '너의 의미'의 노랫말이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떠난 이별의 슬픔이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었다. 그 사이로 불어온 허전한 바람은 아직 남겨진 첫사랑의 향기일까. 스쳐 지나는 간이역과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가 가을의 심상을 잘 그려주고 있다.

국도변에 코스모스가 한껏 피어 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코스모스는 가녀린 생김새가 애잔해서 마치 소녀의 첫사랑과 같은 꽃이다. 가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녀는 코스모스가 만발한 언덕에서 편지를 쓰고, 애태우다가 헤어지고, 또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신이 가장 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고 한다. 그런데 어딘지 가냘프고 볼품이 없어 여러 가지 꽃을 만들었다. 장미나 백합처럼 화려한 꽃이 그래서 나왔다. 그에 비해 코스모스는 실 같은 꽃대에 잎 몇 장이 붙은 것이 전부다.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가냘픈 꽃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간단치가 않다. 코스모스는 모든 꽃의 시작이고 꽃말도 '순정'이다. 처음 내 속에서 피어나 가슴 두근거리는 순정이 된 첫사랑의 꽃이 바로 코스모스인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코스모스에 '자독(自毒)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코스모스는 유채꽃처럼 대형 군락지가 없다. 인공적으로 심어 코스모스가 가득 핀 언덕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대로 유지할 수가 없다. 많이 피었다 싶으면 이듬해는 어김없이 몇 포기만 살아남는다.

꽃씨가 많이 떨어지면, 꽃도 그만큼 많이 피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코스모스는 그 이치를 거부한다. 그리고 쉽게 꺾이지 않는다. 큰 돌이 있으면 몸을 굽힐지언정 꺾이지는 않는다.

감정을 스스로 숨기고 애면글면 한 사람만 그리워하는 첫사랑과 닮았지 않은가?

영화 속에서 첫 사랑은 대부분 위태롭게 흔들리다 헤어지고 잊지 못하는 코스모스와 같다.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년'사진)에서 주희(손예진)는 준하(조승우)를 잊지 못하고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고, '김종욱 찾기'(2010년)의 지우(임수정)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 기억조차 희미한 첫사랑의 그 남자를 찾아 나선다.

숱한 기억 속에서 하필 첫사랑의 감정을 잊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거대한 힘이 있기에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그리워하게 할까.

모진 환경에서도 항상 그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한 사람을 향하고 있는 코스모스는 순결하고 애정 어린, 한때 우주의 전부였던 첫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 코스모스의 영어이름이 '우주'(cosmos)가 된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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