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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저자가 비종교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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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청미래 펴냄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종교에 관한 인식 차이는 크다. 가장 큰 차이라면 아마도 "설명 혹은 증명할 수 있으면 믿겠다"는 비종교인의 입장과 "일단 믿으면 모든 걸 알게 된다"는 종교인의 입장일 것이다. 한쪽은 믿어야 보인다고 말하고, 한쪽은 보이면 믿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인은 종교적 사실에 대해 설명하거나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미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전도의 대상인 비종교인은 증명할 수 없는 한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단계에 이르지 않은(혹은 못한) 사람에게 전도하는 일은 그래서 무척 어렵다. (사실 종교는 증명을 필요로 하는 무엇이 아니다. 증명할 수 있다면 과학이나 기술, 수학의 정리가 되지 종교가 될 리 없다. 어떤 면에서 종교적 힘은 '증명할 수 없음'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다. 철저한 무신론자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받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종교를 배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이 된 그는 이제 종교를 배척하지 않지만,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이 책은 종교에 대한 배척이나 옹호가 아니다. 비종교인에게는 종교의 미덕을 받아들이자고 권고하는 동시에 종교의 독단적인 면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종교란 하늘나라에서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터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한다. 그는 종교가 가진 미덕과 제도들은 유용하고 우리 삶에 위안을 주는 만큼 비록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각자의 신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랑, 믿음, 관용, 정의, 절제 등의 미덕을 배우고 실천할 것은 제안한다. 한마디로 현존 종교의 틀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종교가 갖고 있는 미덕을 받아들이고 생활화하자는 것이다.

보통은 "종교, 즉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다. 종교가 등장한 뒤에 사랑과 믿음, 관용과 정의가 나타난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원래 인간이 갖고 있던 고귀한 가치들이 사라져가는 과정에서 이런 가치의 미덕을 살리고 키워온 것이 종교"라고 말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세속사회는 갈수록 빈곤해지고, 불행해졌지만, 신앙인들은 그 가치를 여전히 지키고 키워 왔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초기 기독교만 해도 다른 종교의 좋은 아이디어를 다시 이용하는 데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다. 기독교는 수없이 많은 이교적 관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심지어 현대의 무신론자들조차도 그런 관습이 애초부터 기독교적인 것이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다"고 말하고 "예를 들면 초기 새로운 신앙이었던 기독교는 한겨울의 축제를 받아들여서 크리스마스로 재포장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영혼에 꼭 필요한 가치조차 일찍이 종교에서 비롯된 특정한 색조 때문에 배척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이유로 세속인인 우리는 신앙에서 가장 유용하고, 매력적인 부분까지도 포기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강조한다.

책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또 종교인 혹은 종교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한다. 종교가 갖고 있는 극단적이고, 독단적인 측면을 제거할 수 있다면 재난과 슬픔을 맞이한 현대인들이 더 쉽게 위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다.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를 결합시켜 사랑과 인간관계를 탐구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출간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여행의 기술' '불안' 등으로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27일 내한해 서울에서 한국독자들과 만남도 가졌다.

336쪽, 1만4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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